저금리 정책 손질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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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채권 딜러들은 19일 시장에서 금리가 크게 올라 채권 값이 떨어진 것을 두고 "박승 프리미엄이 붙었다"고 말했다.

이날 금리 상승은 한국은행이 통안채를 시장수익률 5.9%보다 높은 6.05%에 낙찰시킨 게 직접적인 원인이나 박승 공적자금관리위원장이 한은 총재에 취임하면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크다는 시장의 예상도 반영됐다는 것이다.

한은은 朴 신임 총재를 맞는 4월부터 통화정책을 놓고 깊은 고민에 빠질 듯하다. 정부 일각에서 '경기가 과열됐다'는 말까지 나오는 판에 팔짱만 끼고 계속 버티기는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금리 문제가 현안"=금융계는 "콜 금리 인상 여부가 신임 총재의 첫 화두(話頭)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시장 관계자들은 대체로 4월 1일 취임하는 朴내정자가 4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곧바로 금리를 올리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1분기 경제 성적표가 나오는 5월 초에나 비로소 경기 전반에 대한 판단을 내리고 콜금리 인상을 본격적으로 검토할 것이라는 시각이다. 朴내정자도 이날 "들여다보아야겠지만 경기는 문제될 정도로 과열되지 않았다고 본다"고 말해 이같은 전망을 뒷받침했다.

문제는 올해 대통령선거가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 선거 직전에 금리를 움직이면 정치적 행동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커 대다수 국가의 중앙은행은 선거 직전에 금리를 움직이지 않는다.

이런 시각에서 朴내정자가 정치적 배려 없이 경제적 판단만으로 금리 정책을 펴나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정부와의 관계는 무난할 듯=朴내정자는 청와대 경제수석과 장관(건설부)을 지냈고 현 정부에서도 공적자금관리위원장을 맡아 정부 부처와 손발을 맞춰왔다. 전북 김제 출신으로 진념(전북 부안) 부총리, 이남기(전북 김제) 공정거래위원장, 장승우(광주) 기획예산처장관, 손영래(전남 보성) 국세청장과 같은 호남 출신이라는 점도 거론된다.

한은 임직원의 기대도 크다. 한은 노동조합은 "재경부 관료 출신이 한은 총재에 내정되지 않은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며 "박승 내정자가 평소의 소신을 바탕으로 통화신용정책을 정치 논리에 좌우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수행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또 다른 관심은 朴내정자가 임기를 채울 수 있을 지다.내년에 새 정부가 들어서기 때문이다.

노조는 이날 朴내정자의 임기가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전철환 총재는 이달 말 한은 사상 다섯번째로 임기를 채우는 총재로 퇴임한다.

◇朴내정자와 집값=朴내정자는 집값과 인연이 깊다. 그는 노태우 대통령 시절인 1988년에 건설부 장관을 맡아 2백만호 주택건설사업에 핵심적 역할을 했다. 특히 분당·평촌·중동·산본 외에 한강 이북에도 신도시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일산 신도시를 추가로 세우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 뒤 분양가 자율화 발언으로 주택 가격 폭등을 유발한 책임을 지고 장관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그가 지난해 12월과 올 2월 집값이 급등하면서 부동산대책이 나오는 시점에 한은 총재직에 올라 집값 급등의 주범인 '저금리'에 손질을 가할지 모른다는 점에서 '집값이 뛸 때 뜨는 인물'이라는 말을 들을 만하다.

전철환 총재와 朴내정자의 관계도 화제다. 朴내정자는 全총재의 중학·대학교 1년 선배다. 朴내정자는 6년제 이리공업고등학교를 졸업했고, 全총재는 이리공고의 중학부 후신인 이리 동중을 나왔다.서울대 상대도 朴내정자가 선배다.

허귀식 기자

박 승 말말말…

▶거시정책의 운용에서는 성장이나 고용보다 국제수지와 물가안정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2000년 8월 18일 한국경제학회 초청 강연 '제2 금융위기 다시 오나'에서)

▶재정확대 중심의 케인스적 경기부양책은 바람직하지 않다. 경기대책의 중심은 금융과 수출 쪽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금융에서는 돈을 넉넉히 풀고 금리를 내려 기업의 구조조정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수출 쪽에서 숨통이 트기 위해서는 환율이 달러당 1천3백50원 수준은 되도록 해야 한다. 물가에 미치는 부정적 작용보다 경기와 국제수지에 미치는 순기능이 더 클 것이다. (2001년 8월 25일자 중앙일보 시론 '경제난국 이렇게 대처하자'에서)

▶현 단계에서 저금리 정책은 필요하다. 그러나 정기예금 금리가 4~5%로 내려앉은 현행 금리는 물가상승과 세금을 빼면 제로금리이니 더 이상 내리기 어려운 한계점에 와 있다. 다시 말하면 금리를 더 내려도 투자가 증대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이른바 유동성 함정에 걸려 있다.(2001년 10월 31일자 한국경제신문 칼럼 '경기부양 정책의 한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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