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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총재,측근 백의종군 시킬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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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가 당 내분 해결의 묘책을 찾기 위해 고심 중이다. 김덕룡(金德龍)·홍사덕(洪思德)의원이 만남을 거부했지만 李총재는 어떻게든 만나겠다는 입장이다.

포용과 화합, 배제와 결별의 갈림길에서 일단 화해 노력을 기울이기로 한 것이다. 李총재가 두사람을 대화의 테이블로 끌어들이려면 신뢰회복 조치가 필요하다는 게 중론이다. 그러나 그것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는 데 李총재의 고민이 있다. 핵심은 두가지다. 측근 정치와 당의 지도체제 문제를 어떻게 푸느냐다.

◇측근 문제 어떻게 정리하나=李총재는 지난 12일 일본에서 측근 정치를 부인했다.그러나 다음날 귀국한 뒤엔 태도가 달라졌다고 한다."측근으로 알려진 일부 중진이 총재의 뜻을 빙자해 지구당위원장들을 줄세운다는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정말이냐"며 역정을 냈다고 한다.

李총재는 일본으로 떠나기 전 김용환(金龍煥)국가혁신위원장에게서도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그래서 몇몇 인사들을 불러 "조심하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일이 터졌다.'측근 3인방'으로 알려진 양정규(梁正圭)·하순봉(河舜鳳)부총재와 김기배(金杞培)전 사무총장이 14일 자민련 소속 이원종(李元鐘) 충북지사 사무실을 찾아가 입당을 촉구했다. 자민련은 흥분했다. 당내에선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그러니까 '측근이 설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李총재 주변에서 부총재 경선을 준비 중인 河부총재와 金전총장의 백의종군 얘기가 나온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 측근인 권노갑(權魯甲)씨의 총선 불출마와 최고위원직 사퇴를 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정치를 그만두란 말이냐"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어 李총재가 어떤 해법을 찾을지 주목된다.

◇지도체제 변경되나=李총재가 측근 문제를 해결하고, 대선 전 집단지도체제를 전격 도입할 경우 김덕룡·홍사덕 의원의 마음이 바뀔지 모른다. 그러나 지도체제 변경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다수다.'측근 3인방'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아무리 총재라도 당헌·당규를 멋대로 바꿀 수는 없다. 대선 전에 집단지도체제를 하면 당권싸움으로 당이 깨진다. 그러면 대선에서 진다"고 주장한다. "1997년 대선 때 이한동(李漢東)대표가 대통령 후보였던 李총재의 발목을 잡은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고도 한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는 다르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당 대표가 대통령 후보로 나설 李총재를 방해하면 당원들이 가만히 있겠느냐. 당권을 분산해 당을 개혁하느냐, 마느냐에 국민의 관심이 쏠려 있는 만큼 李총재가 결단해야 한다"는 견해다. 李총재가 어느 논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내분상황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이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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