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 일부 검토안 - 한나라 절충안' 내용 비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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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국회 법사위는 여전히 한나라당 의원들의 농성장이었다. 열린우리당의 국가보안법 폐지안 상정을 막기 위해 위원장석을 점거한 지 엿새째다. 농성이 장기화하면서 당내에서는 한나라당도 보안법 개정안을 상정해 열린우리당과 법안 토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홍준표 의원은 지난 12일 "정기국회 때야 예산 부수 법안이 아니라는 명분으로 보안법 폐지안 상정을 막을 수 있었지만 무한정 물리적으로 막을 순 없다"며 "한나라당에서 전향적인 보안법 개정안을 마련하고 있는 만큼 이를 당론으로 확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 의원이 말한 개정안은 당내 수요모임(대표 정병국)과 발전연(공동대표 공성진.이군현)의 안을 절충한 것이다. 보수파 의원들의 모임인 자유포럼(대표 이방호)안도 있지만 이 절충안이 당론으로 확정될 가능성이 크다. 절충안은 논란이 되고 있는 반국가단체 정의 중 '정부 참칭' 대목을 '정부를 표방하면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는'으로 바꾸었다. 찬양고무죄를 선전선동죄로 변경하고, 불고지.특수직무유기.무고.날조 등은 삭제키로 했다. 이 안은 지난 7월 열린우리당이 마련한 보안법 개정안과 흡사하다. 열린우리당은 형법보완안.대체입법안.개정안 등을 놓고 토론을 벌여 개정안은 채택하지 않고 형법보완안을 최종 당론으로 정했다. <표 참조>

당시 보안법 개정안은 정부 참칭을 삭제했다. 찬양고무죄를 선전선동죄로 바꾼 것이나 불고지 등을 없앤 부분은 한나라당의 절충안과 똑같다.

이에 따라 여권 일각에선 "보안법 폐지란 명분에 집착하지 않을 경우 한나라당과도 접합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김원기 국회의장도 적극적이다. 김 의장은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 고문을 지냈다. 그는 지난 6일 여당의 보안법 폐지안 변칙 상정 시도 직후 "국론 분열이 증폭되고 있는 국가보안법안을 상임위에서 홀로 결론 내리지 말고 국민 여론을 더 철저히 수렴해야 한다"고 여야에 주문한 바 있다. 김 의장의 한 측근은 "김 의장은 양당의 극단적인 주장을 빼고 나면 접합점이 많다고 생각한다"며 "명분 싸움에 집착하지 말고 실리를 살려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 측근은 이어 "지난 9월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는 발언은 정언 명령이 아니다"며 "대통령도 보안법의 해악이 없어지기를 바라며 명분 싸움은 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내에서도 안개모(안정적 개혁을 위한 의원 모임)소속 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온건파는 내심 야당과 합리적 타협을 바라고 있다. 안개모 회장인 유재건 의원은 "보안법 개정과 폐지는 종이 한 장 차이다. 열린우리당이 당론으로 정한 것을 개정으로 봐도 되고, 폐지로 보지 않아도 된다"고 한 바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여전히 강경하다. 박 대표는 13일 의원총회에서 "조만간 보안법 개정안 당론을 확정하겠지만 어디까지나 열린우리당이 폐지안을 철회할 때를 대비하는 것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보안법 폐지안 철회'라는 명분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발언이다. 한나라당 다른 의원은 "박 대표가 너무 명분에 매달리는 것 아니냐. 하루속히 개정안 협상에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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