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장규 칼럼

실업률 6% 시대는 닥치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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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어려운 경제가 내년에는 더 어려워질 거라고 한다. 온통 우울한 전망 일색이다. 올해에 이어 또 4%대의 성장이라니 내년의 경제 분위기가 대충 어떨지 짐작이 간다. 내년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게 더 심각하다. 최근 박승 한국은행 총재도 "한국 경제는 상당기간 4~5% 성장이 지속될 것"이라고 했다. 독일과 일본 사례를 들어 그런 기간이 20년은 족히 넘을 걸 각오해야 할 것도 시사했다.

*** 불황 상당기간 계속될 것

말이 좋아 '저성장'이지, 한국 사람에겐 곧바로 '불황'이다. 선진국 사람들이나 경제학자들이 뭐라 하든 4% 성장이면 우리한테는 심각한 불황이다. 지난해.올해 같은 '불황'이 적어도 20년은 갈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이니 예삿일이 아니다. 20년 내내 5%선에도 못 미치는 경제가 계속된다면 한국 사회는 어찌 될 것인가. 무슨 분란이 생기며, 얼마나 힘들고,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가. 선진국들은 4% 성장을 호황이라는데 왜 우리는 불황이라 호들갑인가. 어떤 자리가 됐건 이런 논의가 분분해야 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하는데 도무지 그런 분위기가 아니다.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을 차리면 살길이 보인다 했듯이 실상을 제대로 알아야 불황시대를 사는 법도 익힐 수 있지 않겠나.

발등의 불은 역시 실업대란이다. 경기가 웬만큼 풀려도 일자리가 줄어드는 세상인데 경기가 계속 쪼그라들고 있으니 내년의 실업은 올해보다 더 심각해질 테고 갈수록 악화될 것이다(최근 소개된 실질실업률 기준으로 따지면 문제는 또 달라진다). 실업률은 도대체 몇%까지 올라갈까. 지금 실업률이 3.5%선인데도 이 야단인데, 만약 6%선이 된다면 사방에서 난리가 날 것이다. 하지만 실업률 6% 시대는 시간문제로 보인다. '성장률 6%-실업률 4%'가 되어도 시원찮을 판에 '성장률 4%-실업률 6%'로 숫자가 뒤바뀌게 되는 셈이다.

실업률 6% 시대는 지금 기준으로 보면 재앙이다. 실업자가 지금의 두 배 가까이까지 늘어난다는 이야기다. 범죄는 물론 거리의 노숙자가 늘어나고 노동시장은 크게 요동칠 것이다. 비정규 임시직 숫자는 더욱 늘어날 것이요, 노조는 임금인상 파업은커녕 일자리 지키기가 급선무로 변할 것이다. 노점상들이 즐비해질 것이요, 대학의 위상은 실업자 양성소로 추락할 것이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더 심해질 것이고, 정부는 빈민구제를 하거나 취로사업을 벌이느라 적자재정을 계속 늘려나가야 할 것이다. 사회적 혼란이 어디까지 번질지 아무도 모른다.

어찌할 것인가. 여러 말 할 것 없이 정부 정책목표들을 모름지기 일자리 창출에 맞춰야 한다. 정권의 명운은 수도 이전 같은 데 거는 게 아니라 바로 이런 데 거는 거다. 일자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을 역전시켜 반대로 늘려가는 작업이야말로 독한 개혁정신 없이는 불가능하다. 국민에게 일거리.먹거리를 마련해주는 것 이상의 개혁 목표가 또 어디 있겠나.

그러나 현실은 하루아침에 안 되게 돼 있다. 병은 만성이고 약발은 더디다. 이미 저질러진 문제들의 결과물로서 실업은 상당기간 늘어만 갈 수밖에 없다. 기업의 병은 기업 스스로 쓰라린 고통을 치러야 비로소 치유될 수 있는 것이요, 노동시장도 그들의 무리와 과오에 대해 값비싼 대가를 치른 다음에야 어쩔 수 없이 법의 테두리로 돌아올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지금 분위기로는 불황의 고통과 학습기간이 늘어나면 늘어났지 결코 줄어들 것 같지 않다. 정부.여당에 대해 내년에도 큰 기대를 걸지 않는다. 다만 '경제위기설은 정권 흔들기의 음모'라는 둥 억지소리나 안 했으면 좋겠다.

*** 대통령이 나서 실상 털어놔야

도리어 대통령이 나서서 솔직히 실상을 털어놓고, 정책의 잘못된 부분을 인정하고, 함께 어려움을 극복하자고 호소하는 편이 훨씬 설득력 있을 것이다. 내년 실업률이 계속 올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과 이유부터 성실히 설명하고 기업이나 노조, 그리고 국민 각자가 할 일을 당당히 요구하는 것이 정부의 소임 아니겠나. 그런 노력마저 외면한다면 한국 경제가 실업률 6% 시대로 가는 길은 더욱 빨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장규 경제전문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