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는 아름다워] 싹 틔운 '기초예술'…내년엔 꽃 피웠으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이때면 누구나 지난날을 되돌아보려 한다. 매스컴의 고전적 연말행사의 하나가 된 '열쇠말(키워드)'로 이 코너는 망년의식을 치르고자 한다.

올해 이 칼럼은 공연예술계를 관통하는 열쇠말로 '기초예술'을 골랐다. 이 신조어의 성격은 실로 모호하지만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연극.무용.음악 등 돈 버는 것보다는 예술적 가치 실연이 목적인 '순수예술'의 대용어인 듯하다. 적어도 참여정부 2년째인 올해 이전까지 예술은 양자의 대립구도였다.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이 그것이다. 순수예술은 고결하고 엄숙한 그 무엇이기에 필부는 범접할 대상이 아닌 것으로 치장됐다. 반면 순수의 상대어 '비순수'도 아닌 대중예술은 근거도 모른 채 이른바 '딴따라'들이나 기웃거리는 질 낮은 대상으로 치부됐다. 관객들은 오랫동안 이 용어의 관습에 길들여져 예술 전반에 대한 심각한 곡해를 내면화했다.

아마도 '기초예술'이라는 용어가 올해 문화.예술계 일각의 이슈로 등장한 이유는 이런 고질병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 것 같다. 지난 4월 '기초예술연대'의 출범은 관심을 촉발시킨 기폭제였다. 일단 천상의 순수가 지상의 기초로 대체되니 갑자기 문화예술계의 뿌리가 튼튼해진 듯 든든하다.

문예진흥원 기관지 월간 '문화예술'은 장장 7개월 간 이 주제를 특집으로 다루며 기초예술 진흥을 위한 합목적성을 전파하는 데 앞장섰다. 이를 통해 수많은 논객의 말씀이 있었다. 그러나 반추해보면 무수한 관념적 제안은 있었으되 실천적 대안은 부족했다. 그 사이 문화관광부는 직제 개편을 통해 기초예술진흥과를 신설했다.

이제 문화부는 그간 나온 무수한 제안과 각계의 요구사항을 수렴해 내년 중 기초예술을 살찌울 혁신적인 제도와 시스템을 제시했으면 좋겠다.

뭇 제안에 편승해 나도 하나 한다면 제발 기초예술의 반대쪽 사람들, 이를테면 그 기초예술을 가공해 소비할 '시장'(옛 대중예술도 그 중 하나)의 말도 경청하라는 것이다.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다.

정재왈 공연평론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