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14% “학대 받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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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박모(88·여)씨는 15년 전 막내아들이 결혼하면서 같이 살았다. 그러다 아들이 몸이 아파 숨진 3년 전부터 며느리가 “(다른) 아들 집엘 가든지, 딸 집으로 가든지 나가달라”고 압박했다. 49재가 끝나자마자 며느리는 “이제 큰아들 집으로 가라”고 구박했다. 며느리는 밥을 차려주지 않았고 집안일을 박씨가 도맡아야 했다. 도배 공사비와 손녀 학원비를 며느리가 부담하지 않아 박씨가 500만원을 냈다고 한다. 박씨는 “재산을 막내아들한테만 줬는데 며느리가 나가라고 하니 억울하고 답답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노인의 13.8%가 박씨처럼 학대를 받은 경험이 있고 학대하는 사람은 대부분이 자녀와 그 배우자(며느리나 사위)라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보건복지부는 세계 노인학대 인식의 날(15일)을 앞두고 전국 노인학대 실태조사 결과를 14일 발표했다. 지난해 4월부터 1년간 전국 65세 이상 노인 6745명을 면접 조사했다. 노인학대 조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노인들이 경험한 학대 중에는 정서 학대가 67%로 가장 많았다. 복지부는 ▶노인이 말을 걸어도 가족이나 보호자가 무시하거나 ▶욕하고 화를 내며 ▶노인에게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말을 하고 ▶원하지 않는 것을 강요하는 등의 행위를 정서 학대로 분류했다.

다른 학대 유형으로는 방임 22%, 경제적 학대 4.3%, 신체적 학대 3.6% 순이었다. 정서 학대를 제외한 나머지 유형의 학대를 경험한 노인은 응답자의 5.1%였다. 학대를 하는 사람은 자녀가 50.6%, 자녀의 배우자(며느리나 사위)가 21.3%였다.

김모(69)씨는 아들의 학대를 받은 경우다. 아들(28)은 학교를 중퇴한 뒤 가난한 집안 환경을 원망하며 아버지·누나 등 가족에게 “돈 내놔라” “물려줄 재산이 있느냐” 며 욕설과 폭력을 일삼았다. 일주일에 네 번 이상 술을 마시고 칼·술병·드라이버 등 흉기를 휘두르며 13년째 김씨를 학대해 오다 정신병원으로 이송됐다.

하지만 학대를 경험한 노인의 65.7%는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2.5%만 전문기관이나 경찰에 도움을 청했다. 개인적인 일인 데다 부끄럽다는 이유에서다. 복지부는 노인에게 폭력을 휘둘러 다치게 할 경우(상해) 7년 이하 징역형에 처하는 노인복지법 규정을 고쳐 형법의 존속상해와 같은 10년 이하 징역으로 높일 계획이다. 또 존속 폭행에 대해 피해자의 명시적 의사에 반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는 ‘반의사 불벌죄’를 적용하지 않도록 법무부와 협의해 법을 고칠 방침이다.

신성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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