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병아리들 외침 "우리는 노란 요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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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그와 1백50명의 어린이들에게 시합의 승패란 중요치 않다. 축구, 그 자체를 즐길 뿐이다. 사람들에게 웃음을 전파하는 일도 중요한 임무 중 하나다. 16강에 못 오르면 어떤가. 대신 모두가 축구장에서 활짝 웃고, 그 공간이 함께 어울리는 축제의 장이 됐으면 하는 게 이들의 소망이다-.

어린이 프로그램 전문 MC로 유명한 개그맨 김종석씨. 어린이들 사이에서 '뚝딱이 아빠'라는 캐릭터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그가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의미있는 작업을 하고 있다. 어린이들에게 월드컵 문화를 전파하는 전도사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것이다.

"어린이가 축구를 좋아하면 온 가족이 경기장을 찾게 되죠. 승부요, 좀 지면 어떻습니까. 가족들이 함께 응원하면서 즐거워하면 그것으로 된 것 아닙니까."

그래서 그가 만든 것이 어린이 응원단이다. 1999년 초 '병아리 응원단'이란 이름을 걸고 유치원생 20명으로 출발한 이 팀은 현재 회원이 1백50명으로 불어났다. 지난해 11월에는 대대적인 창단식도 가졌다. 소문을 듣고 자원한 7~9세의 어린이들이 그 구성원이다.

"몇해 전 선진국들을 순회할 기회가 있었는데, 승부를 떠나 스포츠 자체를 즐기는 그들의 문화에 깜짝 놀랐습니다. 저도 어린이들에게 이런 문화를 심어주고 싶었습니다."

모든 운영비는 그의 호주머니에서 나온다. 모임 30분 전에 김밥을 주문하고, 스피커 등을 챙기는 건 너무나 익숙해진 그의 일과다. 스피커는 집에 있던 걸 전면 수리해 쓰고 있다.

그는 구체적인 운영비는 밝히길 꺼려했다. 골프를 안 하는 대신 이런 일을 한다고만 이해해 달라고 했다. 기업 등에 도움을 요청하면 어떻겠느냐 했더니 "겉만 번드레해질까 싫다"고 말한다.

월드컵 'D-100'의 벽이 깨지면서 '병아리 응원단'도 바빠졌다. 이들이 하는 일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찾아 월드컵 붐을 일으키는 데 일조하는 것이다.

월드컵 송에 맞춰 앙증맞은 율동을 선보이기도 하고, 어른들에게 승부를 떠난 화합의 중요성을 얘기하기도 한다. 초등학교는 물론 지하철 역사·시민회관 등 사람들이 많은 곳이면 어디든 그들의 무대다. 지금까지 모두 86회나 미니 공연을 가졌다. 일본 NHK에서도 세번이나 이들을 취재해 갔다.

"어린이들이 방안에만 틀어박히지 말고 밖에서 건강하게 뛰어놀았으면 해요. 월드컵은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스포츠 문화도 배울 수 있고요. 제가 여기에 일조할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습니다."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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