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경원 칼럼

자이툰 부대 방문은 '멋진 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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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노무현 대통령의 아르빌 자이툰 부대 방문은 참으로 멋진 연출이었다. 대한민국의 국군 최고통수권자가 자신의 결정으로 이국만리에 파견돼 땀 흘리고 있는 장병들을 직접 현장으로 찾아가 위로하고 격려한 것은 우리의 정치적 입장이 무엇이건 상관없이 훌륭한 제스처였다.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기 때문에, 또는 미국을 반대하기 때문에 노 대통령의 아르빌 방문을 반대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자신의 결정에 따라 목숨도 내놓아야 하는 젊은이들을 찾아가 그들의 사명감과 용기를 북돋워주는 것은 너무나도 인간적이고 당연한 행위다.

*** 대미 관계서도 상징적 효과

노 대통령은 자이툰 부대 장병들에게 "여러분이 흘린 땀이 대한민국의 외교력"이라고 확인해줌으로써 이라크 파병의 의미를 밝혀주었다. 그리고 "대한민국 대통령이라고 하니까 알아주더라"는 말은 대한민국의 존재를 가장 감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면서 노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이렇게 컸구나"하는 감탄을 고백한 것은 철없는 젊은이들이 대한민국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려고 하는 데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진실이 될 것이 틀림없다.

그동안 우리는 성장의 전략과 방법을 놓고 의견 격차가 벌어지기도 하고 심각한 갈등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가 서로 헐뜯고 싸울 때에도 대한민국은 쉬지 않고 고도성장을 계속해 왔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지금 바로 그와 같은 성장의 성취가 있기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무시 못하는 존재가 되었고, 그러한 사실을 누구보다 노 대통령이 피부로 가장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번 노 대통령의 아르빌 방문은 한.미 관계에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동안 우리는 미국의 요청에 따라 이라크에 파병하기는 하면서도 마지못해 파병하는 인상을 준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에 노 대통령은 직접 이라크에 상륙함으로써 말로써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상징적 효과를 얻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노 대통령은 아르빌 방문 계획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해외순방 중에 로스앤젤레스에서부터 계속 반미적이라고 오해될 수 있는 발언을 한 것이 아닌가 한다.

여하튼 해외순방 중 쏟아진 노 대통령의 발언 내용을 보면 북한 핵 문제에 대한 미국의 입장에 대해 한국 정부는 동의하지 않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아르빌 방문 이후에도 한.미 간에 북핵 문제에 대한 입장을 하나의 일관된 정책으로 조율해야 하는 과제는 계속 남는다. 다행히도 한국과 미국의 관점을 분석해 보면 양국의 우려와 희망을 조화할 수 있는 논리는 있다.

본질적으로 한국의 최대 관심사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지 않고 북한 핵을 포기시키는 것이고, 미국은 전쟁은 원하지 않지만 북한 핵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미 간에 공통되는 것은 협상을 통해 외교적으로 해결하는 것인데, 만일 협상이 성공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여기에서 미국은 자연히 북에 대해 압박 조치들을 취하는 방향으로 나갈 가능성이 있고 한국의 입장은 아직 분명하지 않다. 그리고 6자회담의 다른 나라들의 태도도 불분명한 것이 사실이다. 미국이 그런 경우에 대북 압박 정책에 한국이 동의해 주기를 기대한다면, 무엇보다 대북 협상에서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때 약속하는 인센티브가 북한이 믿을 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충분해야 한다. 미국의 협상안에 대한 국제적 컨센서스가 있을 때 비로소 대북 제재의 제2단계에 대한 국제사회의 동의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 북핵 협상전략 조율이 과제

이런 뜻에서 미국의 책임은 막중하다. 그렇다고 미국은 북한을 군사적으로 공격하지 않는다고 여러 번 천명했는데도 북한을 공격하지 말라고 소리내어 외친다면 미국으로서도 불쾌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앞으로는 한.미 당국자 간에 조용한 협의를 통해 북한을 설득할 수 있는 구체적 협상전략을 만들어야 할 차례다. 이번 한국 대통령의 아르빌 방문은 한.미 간에 보다 성숙한 대화를 위해 좋은 분위기를 조성해 주었다.

김경원 고려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