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잘못된 방향으로 번지는 이철우 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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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여야가 사건의 본질을 외면한 채 잘못된 방향으로 문제를 끌고 가고 있다. 열린우리당 이철우 의원의 북한 노동당 입당설을 둘러싼 여야 간의 논란이 그렇다. 열린우리당도, 한나라당도 모두 정략적 차원에서 문제를 다루려 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민병두 기획위원장은 어제 이 의원 문제와 관련, "과거 공안 고문 사건 전반에 대해 피해자들의 증언과 진술을 광범위하게 수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거 안기부 차장을 역임한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의 당시 역할에 대해서도 규명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듣기에 따라선 신공안 정국을 예고하는 발언 같다. 이부영 의장은 한 술 더 떴다. "이참에 독재에 빌붙어 출세한 사람들이 어떻게 재산을 형성했는지도 조사해 봐야 한다"고 했다. 역대 정권이 대를 이어가며 써먹었던 사정(司正)의 칼을 이 정권도 휘두르겠다는 의미처럼 들린다.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 김덕룡 원내대표는 어제 기자회견을 하고 이 의원 사건의 국회 국정조사 추진 방침을 밝혔다. TV 중계 청문회까지 제안했다. 근거도 밝히지 않은 채 "북한 노동당과 관련된 여당 의원이 더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 문제를 계속 확대해 나가겠다는 의도로 비친다.

여야 모두가 문제의 본질에서 비켜나 있다. 본질은 이 의원이 노동당 입당 사실이 있느냐다. 현재 재판 기록이나, 나타난 사실로는 이 문제가 명쾌히 규명되지 않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현 시점에서의 그의 이념 좌표다. 그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체제가 무엇이냐다. 자유 민주주의냐 아니냐다. 그렇기에 이 의원 본인의 진지한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 솔직한 자기고백만이 지금의 번져가는 색깔 싸움을 막을 수 있다.

물론 그는 법적인 책임을 이미 치렀다. 그러나 "그것으로 모든 문제가 끝났으니 더 이상 묻지 말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가 사회운동가가 아닌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기 때문이다. 국민 마음 속에 남아 있는 걱정을 해소해 줄 의무가 있다. 그런 뒤 여야는 문제를 과거 지향적인 시각이 아니라 미래 지향적인 시각에서 풀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