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공격수 출신 이정수, 그리스 울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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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대표팀 중앙수비수 이정수(30.가시마)가 큰일을 냈다.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이라는 유쾌한 도전에 나선 허정무호에 첫 승리를 안겼다.

이정수는 12일 오후(한국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포트엘리자베스 넬슨만델라베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그리스와 2010 남아공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 B조 1차전에서 전반 7분 선제 결승골을 트터려 2-0 승리를 안겼다.

기성용(셀틱)이 왼쪽 코너 부근에서 차올린 프리킥을 이정수가 골문 앞에서 오른발로 차 넣었다.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등 강팀과 2, 3차전을 치러야 하는 한국으로서는 이번 그리스와 첫 경기에서 승리가 절실했는데, 빨리 터진 선제골로 쉽게 경기를 풀어갈 수 있었다.

2002년 안양 LG(현 FC서울)에서 K-리그에 데뷔한 이정수는 소속팀은 물론 대표팀에서도 종종 골을 터트려 '골 넣는 수비수'로 잘 알려져 있다.

2008년까지 K-리그에서 138경기에 출전해 6골 4도움을 기록했고, 지난해 일본 J-리그로 이적해서는 현재까지 7골을 기록 중이다.

A매치에서는 이날까지 26경기에 출전해 3골을 넣었다.

이정수가 수비수임에도 자주 골을 넣는 것은 그의 몸에 공격수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정수는 스트라이커 출신이다. 하지만 프로 입단 후인 2003년 당시 조광래 안양 감독이 수비수로 뛰라고 제안했다. 처음에는 싫었지만 외국인 공격수들이 득세하는 상황에서 경기를 많이 뛰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정수는 이날 경기 후 "공격수 출신이라 볼의 움직임이나 타이밍 등을 다른 수비수들보다 잘 아는 장점이 있다"고 '골 넣는 수비수'가 될 수 있었던 배경을 설명했다.

그리고는 부모님, 그리고 자신을 수비수로 변신하게 해준 조광래 감독과 K-리그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뛸 때 수비수로 성장하게 해준 정외룡 전 감독이 생각난다고 했다.

그는 "자랑같지만 위치선정이 좋았다"고 웃어보이더니 곧 "기성용의 크로스가 워낙 좋아 발만 갖다 댔다"며 도움을 준 기성용에게 고마움도 전했다.

이정수는 최근 대표팀 훈련 때에도 가끔 골을 넣었다. 이정수에 따르면 후배 오범석(울산)이 '요즘 감이 너무 좋은 것 같다. 골을 넣을 것 같다'고 이야기해 줄 만큼 느낌이 좋았다.

이정수는 허정무호 출범 이후인 2008년 3월26일 북한과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예선 경기에서 뒤늦게 A매치 데뷔전을 치른 대기만성형 선수다.

하지만 이제 대표팀에서는 조용형(제주)과 함께 부동의 중앙 수비수로 자리매김했다.

장신 선수들이 많은 그리스는 세트피스가 강점인데 이정수는 이날 조용형과 함께 무실점 승리를 이끌었다.

이정수는 "세트피스가 강하다는 것을 잘 알고 수비 훈련을 많이 했다"고 밝혔다.

한국은 오는 17일 아르헨티나와 조별리그 2차전을 치른다.

이정수는 "승리의 기쁨은 오늘까지만 만끽하고 내일부터는 다시 준비해야 한다. 아르헨티나를 이기면 좋겠지만 비기더라도 16강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으니 버틸 때까지 버텨볼 생각이다"며 새롭게 각오를 다졌다.

디지털뉴스 jdn@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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