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장급 이상 간부가 이용호 수사상황 알려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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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수동(守東·구속) 아태평화재단 전 상임이사가 1999년 5월 안정남(安正男) 당시 국세청장의 청장 임명 사실을 일주일 전에 미리 알고 통보해 주는 등 각별한 친분 관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차정일(車正一)특별검사팀은 G&G그룹 회장 이용호(容湖·구속)씨가 이수동씨를 통해 安씨에게 계열사의 세무조사 무마 등을 청탁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집중 수사 중이다.

이는 이용호씨 계열사인 인터피온의 이사를 지낸 도승희(都勝喜)전 서울시정신문 회장이 최근 특검에서 진술한 것으로, 都씨는 지난 3일 본지 기자와 만나 같은 내용을 재차 밝혔다.

이와 별도로 이수동씨는 지난해 11월 대검 중수부가 이용호씨 사건을 수사할 당시 검찰 고위 간부 모씨에게서 수사 진행 상황을 전해 듣고 자신의 연루 사실을 감추기 위해 都씨에게 "검찰에 출두해 나를 보호해 달라"고 부탁하는 등 자신의 혐의를 철저히 은폐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특검팀은 이 검찰 간부를 조만간 소환, 혐의(공무상 비밀누설)가 확인되는 대로 사법처리키로 했다.

◇검찰 고위 간부가 수사 내용 누설=씨는 4일 조사에서 당시 수사 상황을 알려준 사람을 "검사장급 이상 고위 간부"라고만 진술했다고 특검팀은 밝혔다.

당시 이수동씨는 都씨에게 "며칠 뒤 대검에서 당신을 오라고 할 것이다. 그때 5천만원은 당신이 쓴 것으로 하라"고 부탁한 것으로 드러났다.

都씨는 며칠 뒤 실제로 대검에 소환돼 씨의 부탁대로 진술했고, 이수동씨는 都씨가 대검 조사를 받기 직전 미국으로 출국해 일주일 뒤 귀국해 수사를 피해 갔다.

이수동씨는 이에 앞서 2000년 서울지검이 이용호씨 사건을 처음 수사할 때도 수사 진행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팀은 그때도 문제의 검찰 간부가 수사 내용을 전해준 것으로 보고 조사 중이다.

◇이용호,이수동-안정남 고리 이용했나=都씨는 "이수동씨가 99년 5월 서울 롯데호텔에서 만나 '안정남을 이번에 국세청장에 앉히기로 했다'고 말해 곧바로 安씨(당시 국세청 차장)를 찾아가 전해줬다"며 "安씨는 '6개월 뒤에나 될 줄 알았는데'라면서 캐비닛에서 돈을 한 움큼 꺼내 주며 '식사나 하시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일주일쯤 뒤 安씨가 실제로 청장이 된 뒤엔 이용호씨가 국세청 간부 출신 吳모씨를 통해 安씨에게 수차 접근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용호씨는 99년 10월 계열사인 KEP전자가 가짜 세금 계산서를 이용해 흑자를 낸 것처럼 허위 회계 장부를 꾸몄다가 마포세무서에 적발됐으며,관할 금천세무서로 넘겨져 이듬해 1억4천만원의 가산세를 부과받은 바 있다.

때문에 당시 특별 세무조사 대상인데도 단순히 '서류 처리 실수'라는 이유로 선처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이용호씨 주가 조작 공범 체포=특검팀은 이날 이용호씨가 ㈜레이디가구의 주식을 인수한 뒤 되팔아 40억원대의 차익을 남기는 데 공모하는 등 이용호씨의 자금 관리에 중요한 역할을 해 수배됐던 정상교(40)씨를 체포했다.

특검팀은 정씨를 통해 이용호씨가 계열사 주가 조작 등으로 거둔 2백56억원의 차익을 정·관계 로비에 사용했는지를 조사 중이다.

이상언·김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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