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 함께] 30년 ‘한국 사랑’으로 키운 나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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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이방인이 평생을 바쳐 이룩한 한국 사랑의 결실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충남 태안의 천리포수목원과 그 설립자 민병갈(미국명 칼 밀러)원장에 관한 책『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목원』(류기성 사진, 김영사, 208쪽, 1만7900원)을 쓴 임준수(사진)성균관대 겸임교수는 담담하게 집필 목적을 밝혔다.

그가 민 원장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0년. 신문사에 근무하던 중 인터뷰를 위해 만났다고 한다.

“지한파 인사라 해도 결국은 우리 골동품과 문화재를 반출해 간 경우가 많죠. 그런데 민 원장의 한국 사랑은 나무 형태로 이 땅에 고스란히 남았잖아요. 그의 무조건적인 한국 사랑과 나무에 대한 열정을 알면 누구든 반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 후 12년간 세대를 뛰어넘은 우정을 쌓았다. 90년대 초반엔 충남과 서울을 오가며 매주 한 번은 만날 정도였단다. 그러다 2002년 민 원장이 세상을 떠난 후 1년여에 걸쳐 그의 유산인 천리포수목원의 아름다움과 가치, 거기에 들인 헌신과 애정을 정리해 묶어 낸 것이다. 생전의 대화를 기록한 메모와 발품을 팔아 모은 수많은 자료가 바탕이 됐다.

천리포수목원은 국제수목학회와 미국호랑가시학회가 인정한 국제적인 수목원. 임 교수에 따르면 이는 온전히 민 원장의 작품이다. “돈이나 권력으로 이룰 수 없는 일이 있죠. 민 원장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천리포수목원은 없었을 겁니다.”

45년 연합군으로 한국에 첫 발을 디딘 후 이듬해 제대하고는 한국은행 고문, 증권사 임원 등을 지낸 미국인 칼 밀러는 62년 우연찮게 천리포에 땅을 구입한다. 그 후 70년 첫 나무를 심고 불과 30년 만에 세계에서 손꼽히는 수목원으로 키워냈다. 임 교수는 그 비결을 화장실에 갈 때도 식물도감을 가져가 나무 이름을 외우는 열성, 수천 종의 나무 이름을 기억하는 기억력, 국교 정상화 전에 중국에서도 나무를 들여 온 섭외력에 더해 목련이 수놓아진 현관 앞 깔개를 지나면서도 “목련아, 미안해”를 되뇐 애정 등 민 원장 개인에게서 찾았다.

“아름다운 나무 사진으로 책을 빛내준 사진작가 류기성씨 등 여러분의 도움이 컸다”는 임 교수는 “이번엔 수목원 자체에 초점을 맞췄지만 기회가 닿는다면 민 원장의 일생에 관한 책을 쓰고 싶다”고 밝혔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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