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억대 내기 골프 친 부농 구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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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경기도 김포에서 대대로 벼농사를 지어온 선모(50)씨가 골프채를 처음 잡은 것은 1998년. 고된 농사일로 생긴 만성 허리통증에 골프가 좋다는 의사의 권유 때문이었다.

부농(富農)으로 지역 유지들의 친목 모임에서 부회장을 맡은 선씨는 곧 골프 동호회에 가입했다. 85타 수준의 회원 이모(59)씨의 집중 지도를 받은 선씨는 1년여 만에 81타를 기록해 회원들 사이에 '신동'으로 불렸다.

그러나 자신감이 생긴 99년 내기 골프에 손을 댄 것이 화근이었다.

처음엔 한 타에 10만~20만원을 걸었으나 점점 커져 경기당 수천만원의 돈이 오갔다. 2001년까지 3년 동안 선씨가 골프로 벌어들인 돈은 4억원. 결국 2003년 4월 꼬리가 잡혀 상습도박 혐의로 쇠고랑을 찼다.

선씨는 구속된 뒤 2개월여 만에 '모내기철을 놓치면 한 해 농사를 다 망친다'며 법원에 탄원서를 내 보석으로 풀려났다. 하지만 석방된 직후 그가 달려간 곳은 논이 아닌 골프장이었다. 손에는 농기구 대신 골프채가 쥐여 있었다.

서울 남부지검 형사6부는 9일 2002년 12월부터 지난 5월까지 32차례에 걸쳐 8억원대의 내기 골프를 친 혐의(상습 도박)로 선씨 등 3명을 구속기소하고 함께 골프를 친 나이트클럽 사장 김모(57)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 조사 결과 선씨 등은 작게는 한 경기에 4500만원, 크게는 1억여원씩 판돈을 걸고 내기 골프를 친 것으로 드러났다. 첫 내기에서 400여만원을 따 내기 골프에 빠져든 김씨는 선씨 등에게 속아 그 뒤 한 번도 이기지 못한 채 은행 대출금 등 모두 8억여원을 잃었다.

김씨는 '돈을 돌려달라'고 매달려 2억3000여만원을 되찾았으나 '3억원을 추가로 돌려달라'는 요구가 거절당하자 처벌을 감수하면서 검찰에 신고했다.

검찰 관계자는 "선씨는 농사일을 뒤로 하고 도박 골프를 즐긴 것을 뒤늦게 후회하고 있으나 이미 중독 상태"라고 말했다.

임장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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