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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병 연장 - 치졸한 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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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하 정치부 기자

노무현 대통령이 8일 이라크 자이툰 부대를 전격 방문했다. 부대원들에게 "여러분이 흘린 땀이 대한민국 외교력"이라고 격려했다. 대통령이 위험을 무릅쓰고 이라크까지 날아간 것은 한.미동맹 강화로 북핵 문제를 풀어가겠다는 한국 정부의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바로 그 다음날 국회에선 이라크 파병 연장 동의안 처리가 불발로 끝났다. 국방위를 통과한 파병 동의안을 전원위원회에 회부하자고 주장한 85명의 의원 때문이었다. 파병 연장안에 대한 반대 의사 표시다. 놀라운 것은 참여 의원 가운데 여당 의원이 62명이나 됐다는 점이다. 대통령이 위험을 무릅쓰고 의욕을 보이고, 청와대가 사활을 걸고 추진하는 핵심 외교정책을 여당 의원의 41.3%가 제동을 건 것이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라크에 국군을 파견한 것은 국익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국회 주변에선 "한나라당이 파병 연장에 찬성하고 있어 동의안이 통과될 것이 뻔하니 전쟁 반대 명분이나 살려두자"는 계산된 행동이란 지적이 나온다. 진짜 한.미동맹이야 어찌 됐든 반드시 이라크에서 국군이 철수하는 게 옳다고 믿는 여당 의원이 있다면 차라리 탈당하는 게 떳떳하다.

여당 사정이 이렇다고 전원위 불참을 선언해 파병 연장안 처리를 무산시킨 한나라당도 책임을 피해갈 수 없다. 입만 열면 안보를 내세우는 보수정당이 여야 대립이 격화되자 국익과 직결된 사안을 슬그머니 뒤로 돌려 대여 협상용 카드로 쓰겠다는 것은 떳떳하지 못하다.

9일 밤 의원총회에선 "여당에서도 반대하는 파병 연장안을 우리가 왜 총대를 메느냐""파병 연장안과 예산 삭감을 연계하자"는 주장이 속출했다고 한다.

나라의 근본을 지키겠다는 보수정당이 국익을 볼모로 여당과 벼랑 끝 싸움을 펼치려 해서야 어떻게 국민의 신뢰를 얻을 것인지 궁금하다.

김정하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