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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비아그라 잡아내는 포청천 “인터넷으로 파는 약은 모두 가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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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잘나가는 유명 제품은 가짜를 찾아내 막는 일이 비즈니스의 중요한 일부다. 물건을 잘 만들어 많이 파는 일 못지않게 매출과 수익을 결정적으로 좌우하기 때문이다. ‘고개 숙인’ 남자들에게 희망을 준 비아그라도 그런 제품 중 하나다. 미국의 세계 최대 다국적 제약업체인 화이자의 스콧 데이비스(52·사진)는 이 회사 글로벌 시큐리티팀의 아시아·태평양 총괄 책임자다. 각국을 돌아다니며 가짜 비아그라를 포함해 화이자 상표의 가짜 의약품을 추적하는 일을 한다. 현지 경찰과 공조도 해 ‘제약업계의 CSI(과학수사대)’로 불린다.

실제로 그의 팀원 중에는 미국 연방수사국(FBI)이나 관세청 등 수사·보안기관 출신이 많다. 수십 년간 마약이나 가짜 의약품을 다루는 불법조직을 상대해 온 베테랑도 다수 포진했다. 데이비스 본인도 2008년까지 미 관세청 특수요원으로 일했다. 최근 한국의 관세청·식품의약품안전청·경찰 등과 협력 방안을 논의하러 방한해 기자와 만났다. 그는 “가짜 의약품 시장은 88개국에서 연간 750억 달러(약 87조원)에 이른다. 가짜약이라면 화이자 제품이 아니라도 캐내 법적인 조치를 한다”고 말했다.

그가 지난해 가을 중국 산둥성 외곽의 가짜 비아그라 생산현장을 찍은 사진들은 충격적이었다. 다음은 그의 설명 요약.

“대문은 자동차정비소처럼 위장했지만 안으로 치고 들어가자 가짜 약 제조기기가 드러났다. 양동이와 고무호스가 뒤엉킨 가운데 회색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기계에선 약품 재료가 반죽되고 있었다. 이렇게 불결한 환경에서 제조된 알약이 비닐봉지에 가득 담겨 한쪽 구석에 쌓여 있었다. 전 세계로 밀반출될 경쟁사의 가짜 발기부전 치료제 였다. 특유의 노란색을 내려고 도로용 페인트를 쓰고 있었다.” 또 다른 사례. 태국의 한 거리여성이 아파트 주방에서 가짜 의약품을 불법 제조하다가 적발됐다. 의약품 성분을 섞는 도마 위엔 다듬다 만 생선의 피가 묻어 있었다.

데이비스는 “위생 문제 이외에도 어떤 유해성분이 들었는지 알 길이 없어 치명적인 증상을 나타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쥐 털은 물론 붕산·납과 같은 유독 물질이 섞인 경우도 있었다는 것이다. 가짜 비아그라의 경우 주성분인 ‘실데나필’이 아예 빠져 있거나 원래보다 세 배나 많은 양이 검출되기도 했다. 싱가포르에선 가짜 발기부전치료제를 복용한 남성들이 심각한 저혈당 증세를 보인 사례가 의학저널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에 보고기도 했다. 입원 환자 45명 중 7명은 혼수 상태에 빠지고 그중 4명은 결국 숨졌다.

가짜 발기부전치료제는 중국이나 인도·파키스탄 등지에서 주로 제조돼 서류가방이나 선박 등에 숨겨져 밀수출된다. 한국으로 유입되는 가짜 의약품은 주로 인도에서 만들어졌다고 했다. 심지어 개의 배를 가른 뒤 약을 넣고 봉합해 들여온 경우도 있었다. 가짜 약은 인터넷이나 e-메일, 휴대전화 문자나 길거리·성인용품점·공공화장실의 광고물 등을 통해 판촉을 한다.

가짜와 진짜를 가리는 방법은 무얼까. 데이비스는 “의사 처방을 통해 약국에서 구입하라. 인터넷으로 파는 발기부전치료제는 모두 가짜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병에 담긴 발기부전치료제 역시 모두 가짜라고 했다. 그는 “발기부전으로 병원을 찾는 걸 부끄럽게 생각해 가짜 의약품의 유혹에 넘어가면 건강을 해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주연 중앙일보헬스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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