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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진 기자의 오토 살롱] 포니 디자인했던 이탈디자인, 폴크스바겐 품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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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이탈디자인. 이탈리아의 세계 최대 자동차 디자인 회사다. 국산차 첫 독자 모델인 현대차 ‘포니(사진)’를 디자인했던 곳이기도 하다. 이 회사가 지난달 폴크스바겐 그룹에 인수됐다.

이 회사는 유독 한국과 관련이 깊다. 설립자인 조르제토 주지아로는 ‘포니 정’으로 불린 고 정세영 현대차 회장과 김우중 전 대우차 회장과 막역한 사이였다. 이탈디자인을 세계적인 반열에 올려놓은 일등공신도 현대차였다. 주지아로가 폴크스바겐 골프의 초대 디자이너로 이름을 알리자 1975년 현대차가 그를 찾았다. 포드·미쓰비시 기술을 바탕으로 ‘포니 프로젝트’를 시작한 현대차는 디자인을 주지아로에게 맡겼다. 당시 그에게 지급한 개발비는 100만 달러. 지금 가치로 따지면 1000억원 가까이 되는 막대한 액수다. 포니 디자인은 골프의 스포츠 모델 격인 초대 시로코와 비슷했다. 이 때문에 자동차산업 초보자인 현대차는 시로코 디자인 과정에서 나온 습작을 받았다는 혹평도 나왔다.

주지아로와 함께 포니·포니 엑셀·스텔라·쏘나타(1988형)를 개발한 이재완(현 쌍용차 상품본부장) 전 현대차 상품본부장은 이렇게 말한다. “주지아로는 현대차에 받은 개발비로 토리노에 본사를 지었고, 포니 엑셀이 미국 수출에서 대박이 나면서 명성을 쌓았다. 이후 한국 자동차 디자인을 장악했다.”

주지아로의 다음 고객은 대우차였다. 김우중 전 회장은 주지아로 열성팬이었다. ‘대우차 디자인=주지아로’라는 등식이 나올 정도였다. 90년대 대우차 전성기를 이끌던 라노스·레간자·마티즈·매그너스·라세티가 줄줄이 주지아로 손을 거쳤다. 쌍용차도 렉스톤을 그에게 맡겼다.

폴크스바겐이 이탈디자인을 인수한 것은 세계 1위로 등극하겠다는 야심 때문이다. 이 회사는 2018년 전 세계 연간 1000만 대 판매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선 다양한 신차를 선보여야 하는데, 단시간에 검증된 디자이너를 확보하기 어렵자 800명의 디자이너를 보유한 이탈디자인을 사들인 것이다.

요즘 한국은 디자인으로 세계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현대차가 두드러진다. 오석근 현대차 디자인 총괄(전무)이 주도한 YF쏘나타는 ‘처음으로 현대 고유의 디자인을 보여줬다’는 호평을 받으며 미국 시장을 질주한다. 80년대 후반부터 주지아로로부터 벗어나기를 갈망했던 박종서·차종민 전 현대차 수석 디자이너의 열정이 이제 꽃을 피운 셈이다. 벤츠(2010년형 CLS의 이일환, 구민철)·GM(전기차 볼트의 김영선)·닛산(전기차 리프의 유은선, 최정규)·BMW(3시리즈 쿠페의 강원규) 등 유명 자동차업체들에서 50여 명의 한국인 디자이너들이 활동 중이다. 국내에서는 스포티지R로 호평을 받고 있는 기아차 민창식 디자인팀장 등도 있다. 이들이 제2의 주지아로를 꿈꾸는 한국인들이다.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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