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 제2부 薔薇戰爭 제2장 楊州夢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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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진나라를 멸망케 했던 사치와 음란의 대명사였던 '후정화'가 그토록 세월을 초월하여 인기가 있었던 것은 남녀간의 사랑과 노골적인 성애 행위를 가사에 그대로 담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 노래는 우리나라에도 전파가 되어 특히 고려 충혜왕(忠惠王)때에는 후정(後庭), 즉 뒤뜰에서 궁녀들과 어울려 부르는 노래로 대유행했다. 어찌나 문란한 노래였는지 조선조 세종 때는 폐지까지 되었던 노래로 오늘날 그 가사는 남아 전하지 않지만 미뤄 짐작하여 본다면 장귀비가 예쁜가, 공귀빈이 더 예쁜가, 나는 장귀비가 더 예쁘다 생각한다 노래하면 다른 쪽에서는 공귀빈이 더 예쁘다고 대응하는 일종의 병창(竝唱)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형식은 얼마든지 임의로 가사를 개작해 부를 수 있는 묘미가 있었다. 예를 들어 술집에서는 손님 중 누가 더 매력 있는 사람인가 빗대어 부를 수 있었으며, 손님 또한 술집 기녀 중 누가 더 예쁜가 빗대어 노래 부를 수 있었던 일종의 돌림노래였던 것이다.

실제로 조선조 성종 때 성현(成俔)은 왕명에 의해서 악가(樂歌)를 개산(改刪)할 때 '후정화'의 본 가사를 버리고 조선창업을 송축한 가사로 개작까지 하였던 것이다.

그 무렵.

모든 여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천하의 영웅은 곽자의(郭子儀)와 이광필(李光弼)이었다. 두 사람은 안녹산과 사사명이 일으킨 안사의 난을 평정하였던 대표적인 공신이었다.

곽자의(697~781)는 삭방절도사(朔方節度使)로 근무하던 시절 안녹산의 난이 일어나자 삭방의 군사를 거느리고, 하동절도사(河東節度使) 이광필과 함께 반란군 토벌에 성공하였으며, 후에는 위구르족을 정벌하고, 토번을 무찔러 더 이상 비할 데 없는 무공이라고 칭송되어 상부(尙父)라는 칭호를 받고 분양왕(汾陽王)으로까지 봉해졌던 당나라 최고의 공신이었던 것이다.

그에 비하면 이광필(708~764)은 무공에 있어서는 뒤떨어졌으나 곽자의 보다 훨씬 젊고 미남이었으며, 또한 용맹에 있어서는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던 천하장사였던 것이다.

이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두목이 직접 『번천문집』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천보(天寶)년간 안녹산의 난에 삭방절도사 안사순(安思順)이 안녹산의 종제(從弟)인 까닭으로 해서 사약을 내려 죽게 하고, 조서(詔書)를 내려 곽분양(곽자의)으로 대신케 하였는데, 열흘만에 다시 이임회(이광필)에게 조서를 내려 부절을 가지고 삭방의 병력을 반으로 나누어 동쪽으로 조(趙)나라와 위(魏)나라의 지방으로 나가게 하였다. 안사순이 절도사로 있을 때에는 곽분양과 이임회가 모두 아문도장(牙門都將)이었는데, 두 사람이 서로 사이가 나빠서 참고 견디지 못하여 한 상에서 음식을 먹더라도 서로 흘겨보면서 한마디 말도 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다가 곽분양이 안사순을 대신하게 되자 이임회는 도망하려 하였으나 결행하지 못하였다. 그 때 조서를 내려 곽분양의 군사를 나누어 동쪽으로 나아가 토벌하게 하니 이임회가 곽분양에게 들어가서 청하여 말하되 '내 한 목숨이 죽는 것은 달게 받겠으나 처자는 살려주시오'라고 말하였다. 곽분양이 달려 내려가 이임회의 손을 잡고 마루 위에 올라와 마주앉아 말하기를 '지금 나라가 어지럽고 임금이 파천하였는데, 그대가 아니면 동쪽을 칠 수 없소. 어찌 사사로운 분한을 품을 때이겠소'라고 하였다. 이를 군사관리에게 모두 가르쳐 알리고 조서를 내어 읽고 약속하였다. 작별을 하게 되자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서로 충의(忠義)로서 격려하였으니, 큰 도둑(안녹산)을 평정한 것은 실로 두 사람의 힘인 것이다. 그 마음이 변하지 않을 것을 알고 또 그 재능이 이를 맡길 만큼 있음을 안 후에야 의심하지 않고 군사를 나누어 주고 있는 것이다. 평생의 분한을 쌓아왔으나 그 마음을 알기가 어렵고,분한하면 반드시 상대방의 단점만 보일 것이니 그 재능 알기가 더욱 어려운 것이다…".

두목의 기록처럼 곽자의와 이광필은 당나라 최고의 공신이었으면서도 앙숙지간인 라이벌이었던 것이다.

안사의 난이 평정된 것이 70여년 전인 763년. 그러나 두 영웅은 모든 여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던 연인이었으며, 특히 웃음을 파는 기녀들에게는 최고의 남성상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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