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예산안 끝내 회기 넘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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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새해 예산안이 끝내 정기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연말 임시국회가 불가피해졌다. 여야는 당초 정기국회 마지막날인 9일 국회 본회의에서 예산안을 처리키로 합의했다. 하지만 9일 밤 늦게까지 여야는 절충을 시도했으나 끝내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예산안 조정소위에서 열린우리당은 정부가 제출한 131조5000억원의 예산을 삭감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고수한 반면 한나라당은 대폭 깎아야 한다고 맞섰다.

◆ 네 탓 공방=예산안 처리 실패를 놓고 여야는 네 탓 공방을 벌였다. 열린우리당 예산안 조정 소위 간사인 박병석 의원은 "열린우리당은 당초 3조원 증액을 요구했다가 한발 양보해 8000억원으로 낮췄고 다시 정부 원안(131조5000억원)대로 통과시키는 방안을 제시했다"며 "그러나 한나라당이 기존 방침을 굽히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나라당은 처음부터 예산안 처리를 하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도 했다.

하지만 한나라당 주장은 달랐다. 이한구 정책위의장은 "우리가 7조5000억원 삭감 주장을 펴고 있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소리"라며 "협상을 진행하면서 삭감액을 당초 주장보다 대폭 줄인 안을 내놓았다"고 반박했다. 그러고 나선 "여당이 임시국회를 열기 위해 고의로 심의를 지연시켰으면서도 그 탓을 한나라당으로 돌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사실 나흘 동안 조정소위를 가동하고 예산안을 처리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다는 지적이다. 131조5000억원에 달하는 예산안을 제 일정대로 심의했더라도 빡빡할 수밖에 없는데 대정부질문 때 국회 공백 14일이 발생하는 등 돌발변수가 많았기 때문이다. 여야간 정치 계산법도 달랐다.

열린우리당은 처음부터 산적한 민생법안들을 처리해야 한다며 임시국회를 소집하려 했다. 그러니 겉으론 "예산안 신속 처리"를 주장했지만 급할 게 없었다. 반면 한나라당은 여당의 국가보안법 폐지안 처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 임시국회를 막으려 했다. 그래서 예산안을 정기국회에서 처리하려 했다. 하지만 예산안을 원안대로 통과시킬 수 없다 보니 시한을 넘기게 된 것이다.

◆ 여야 임시국회 전략=한나라당은 어차피 예산안을 임시국회로 넘기게 된 만큼 이를 여당의 보안법 폐지안 등 4대 법안을 막는 무기로 사용한다는 구상이다.

한 핵심 당직자는 "정기국회에선 예산안이 임시국회를 열기 위한 여당의 카드로 쓰였지만, 임시국회에선 한나라당의 카드가 될 것"이라며 "우리가 예산안 카드를 쥐고 있는데 여당이 4대 국민분열법안을 밀어붙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김정부 의원 등 한나라당 예결위원들은 이날 밤 기자회견을 열고 "열린우리당의 긍정적인 변화가 없는 한 예산 심의를 중단할 것"이라고 했다.

임시국회가 열리게 되자 예산안 처리를 놓고 급해진 건 오히려 열린우리당이다. 이젠 하루빨리 예산안을 처리해 정부의 부담을 덜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야당이 예산안 처리에 제대로 응하지 않을 경우 동원할 수단도 준비하고 있다. 당 관계자는 "상황에 따라 다른 법안들과 연계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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