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경제 악화시킨 정부의 오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한국은행이 내년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4%로 크게 낮췄다. 이미 각종 국제기구와 민간 경제연구소들이 다투어 내년도 성장 전망을 낮춰잡은 터라 한은이 전망치를 내렸다고 해서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문제는 앞으로도 이 같은 경기침체 상황을 그대로 방치할 것이냐다.

한은은 9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콜금리를 동결했다. 정부의 인하 압력에도 불구하고 금리 인하가 경기부양에 별 효과가 없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통화정책면에서는 당장 경기를 살릴 수단이 없다는 얘기다. 정부는 내년 하반기에 대규모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통해 경기를 활성화하겠다는 구상이지만 이 또한 시기적으로 늦은 데다 실효성과 실현성이 의문시되고 있다. 재정 쪽에서도 당장 약효가 나타날 만한 뾰족한 대책이 없는 셈이다.

결국 한은이 성장률 전망치를 낮춘 것은 경기침체의 장기화가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공식화한 것에 불과하다.

우리는 경제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도록 정부는 그동안 뭘 했는지 묻고 싶다. 올해 초부터 가시화된 경기침체에 대해 정부는 책임 회피와 말 바꾸기로 일관해 왔다. 경제 부진의 책임을 이전 정권의 탓으로 돌리거나 심지어 '경제위기를 언론이 조장하고 있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경기상황에 대해선 '2분기부터 나아질 것'이라고 했다가, 다시 '하반기에는 좋아질 것'이라고 하더니, 이제는 '내년에도 어려울지 모른다'고 물러섰다.

이에 대해 한 민간경제연구소는 정부가 경기 부진의 심각성을 오판하는 바람에 제때 경기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실책을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진단이 잘못된 마당에 처방이 제대로 나올 리 없다. 그 결과 정부의 각종 경제정책은 혼선을 빚거나 상충되기 일쑤여서 시장의 신뢰마저 잃었다.

이헌재 부총리를 포함한 경제팀은 현실을 직시하고 무엇이 잘못됐는지 숙고하기 바란다. 특히 이 부총리는 이제 자신의 진퇴를 걸고 경제 난국 타개에 나설 것을 당부한다. '대통령이 힘을 실어주지 않는다'거나 '청와대와 여당을 설득하기 어렵다'는 것이 정책 실패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