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내 생각은…

'기초연금제' 잃는 게 더 많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올 정기국회에서 국민연금법 개정을 놓고 논의가 진행될 즈음 한나라당은 지난 2일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 핵심은 국민연금을 기초연금과 소득비례연금으로 이원화하는 것이다. 기초연금은 65세 이상의 모든 국민에게 동일한 연금액(국민연금 전체 가입자 전년도의 평균소득월액 20%)을 국고에서 지급한다. 소득이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소득비례연금은 자신이 낸 보험료(표준보수월액의 7%) 소득에 비례해 급여(소득대체율 20%)를 받도록 하고 있다. 이 개정안의 기본 취지는 사각지대 문제를 말끔히 해소하면서 재정 안정화를 이룩하는 데 있다. 사실 이 같은 개선 효과가 담보될 수 있는지, 쟁점 사항에 대해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충분하다.

첫째, 기초연금 수준의 적절성에 관한 문제다. 2028년 이전까지는 전년도 평균소득월액의 20%에 인정기간 비율(17/40~39/40)을 적용한 2005년 연금액은 1인당 월 12만7000원이다. 이 수준은 2005년 40만1000원의 1인 가구 최저생계비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또 기초생활보장이 기초연금으로 대체됨에 따라 기초연금만을 의존해 살아가는 노인들은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 뻔하다. 그래서 이들 빈곤층의 최저생계보장을 위한 또 다른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는 '고비용 대안'이라는 점이 과소평가돼서는 안 된다.

둘째, 기초연금 지급 대상자를 제한하는 문제다. 국고부담 가능성에 비추어 보면 65세 이상의 노인 중에서 일정 금액 이상의 상위소득자를 지급 대상에서 제외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상위 소득자의 선정기준이 제시된다 하더라도 노인들의 소득은 그 특성상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상위 소득자의 합리적 선정이라는 어려운 문제에 봉착할 게 불 보듯 뻔하다. 만약 기초연금 대상자의 선정이 자산 및 소득조사를 전제로 한다면 기초생활보장과 다를 바 없다.

셋째, 정부 재정의 건전성 여부다. 현행 조세체계를 정비하지 않는 상태에서 몇조원을 국고로 조달할 경우 조세부담의 불공평 문제가 확대 재생산될 우려가 있다. 소득세의 재원 조달은 소득파악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세율 인상으로 인한 근로의욕 저하라는 내키지 않는 수렁에 빠질 수 있다. 반면, 부가가치세는 소득파악 문제를 우회할 수 있으나 소득세에 비해 소득 역진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또 세율 인상은 곧 상품가격의 상승, 물가상승의 압력으로 작용해 소비억제로 나타나 세수 감소는 물론 경기침체를 가져올 가능성도 없지 않다.

더구나 장기적으로 막대한 재원조달을 대폭적인 세율 인상으로 충당할 경우 엄청난 조세저항과 탈세행위에 직면해 재정불안정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즉 저성장과 고령화 추세를 감안할 때 기초연금 지출의 증가 속도가 경제성장률을 크게 앞지를 것으로 전망돼, 과연 조세로 재정 건전성이 확보될 수 있는지에 대해 회의적이다.

넷째, 세대 간 조화의 문제를 들 수 있다. 아동인구는 감소하고 노령인구는 증가하는 상황에서 부과방식은 우리의 아이들과 손자들에게 세부담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즉 미래 세대는 한편으로는 앞 세대의 연금을,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연금을 위해 이중으로 부담하는 셈이다. 최근 이런 문제 때문에 공적연금을 적립방식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목소리를 듣는다. 완전적립까지는 무리라 하더라도 어느 정도 적립기금을 쌓아둘 필요는 있다. 이는 고령화의 부담 증가에 대비하는 세계 공통의 흐름이다.

따라서 기초연금 도입은 보편적 최저소득수준을 보장한다는 측면에서는 사각지대 문제에 대한 확실한 대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세방식은 저성장, 급속한 고령화 등으로 인해 조세수입의 차질이 있게 되면 급여수준을 대폭 삭감하고 지급대상자 범위를 축소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결국 연금액이 노령수당으로 전락해 기초연금의 도입 취지가 무색해질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노인철 국민연금연구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