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기술보다 정신 낙천적으로 생각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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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제1회 월드컵 우승팀 우루과이는 1950년 브라질 월드컵 결선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홈팀 브라질을 꺾고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당시 마라카냥 경기장에 운집한 20만명의 브라질 관중이 일방적으로 브라질을 응원하는 가운데 우루과이는 브라질을 2-1로 꺾었다. 52년 전 우루과이 골키퍼로 뛰면서 우승의 주역이 됐던 호케 마스폴리(84)는 아직도 그때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몬테비데오에서 그를 만났다.

-당시 상황을 회고해달라.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영원히 잊을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브라질만 일방적으로 성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브라질은 스웨덴을 7-1, 스페인을 6-1로 물리쳤고, 반면 우루과이는 스페인에 2-2로 비긴 뒤 스웨덴에 3-2로 간신히 이겼다. 사람들은 모두 브라질이 이길 것으로 예상하고 매사를 준비했다. 그런데 월드컵 두달 전에 우리는 브라질을 이겨본 적이 있다. 리우 블랑코컵 대회에서였다. 두번 싸웠는데 한번씩 승패를 주고받았다. 그 이후 우리는 선수를 대폭 바꿔 더욱 강한 팀이 됐다. 그때는 관중의 수준도 요즘과는 달랐다. 만약 어제 우리가 브라질에서 브라질을 꺾고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다면 다음날 브라질 관중으로부터 즉각 공격을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엔 그렇지 않았다. 결승전 다음날 필요한 물건을 사러 상점에 갔다. 걱정을 하며 갔는데 상점 주인이 오히려 축하를 건네며 사려는 물건을 공짜로 줄 정도였다. 현재는 선수도, 관중도 너무 공격적이고 험해졌다. 축구의 정신을 잃어버렸다."

전기제품 수리하며 선수생활

-브라질전에서 골을 기록한 스치아피노와 지지아는 어떻게 됐나. 또 브라질 최고 스타 지징뇨와 비운의 골키퍼 바르보사의 뒷얘기를 아는가.

"지징뇨는 얼마 전 죽었다. 한달쯤 된 것 같다. 5~6년 전 우루과이를 방문했을 때 만났다. 아주 좋은 선수였다. 바르보사도 기억난다. 지지아는 바르보사의 오른쪽으로 공을 몰고 들어갔는데 바르보사는 건너편의 스치아피노에게 패스할 것으로 착각했다. 지지아는 패스하는 척하다가 곧바로 슈팅했고 공은 바르보사의 손에 맞고 골문 안으로 들어갔다. 월드컵이 끝난 뒤 바르보사는 비난을 받으며 살다가 외롭게 죽었다고 들었는데 월드컵 이후 그를 만나지는 못했다. 당시 멤버 중에 현재 생존해 있는 사람이 아홉명이나 되는데 가끔씩 모임을 갖는다."

-당신의 경력을 말해달라.

"참 오랫동안 축구를 했다. 15세에 시작해 38세에 은퇴했으니 말이다. 특이한 점은 우루과이의 대표적 라이벌 팀인 나시오날과 페냐롤 모두에서 선수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시작은 나시오날에서 했다. 5년간 활약하다가 스물한살 때 2부리그 팀인 리베르풀로 옮겼다. 리베르풀에 있을 때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대표선수로, 페냐롤 소속 선수로 이탈리아·스페인에 두세번씩 갔고 아마 그때 한국에도 갔던 것 같다. 정확히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우루과이에선 예전에 직업 없이는 국가대표가 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우루과이의 클럽들은 너무 가난해 충분한 급여를 주지 못했다. 나는 선수 때부터 30여년 동안 전자레인지를 수리하며 살았다. 대표팀 훈련을 위해 수리 예약시간을 자주 바꾸기도 했다."

-50년 외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최고의 대회는 54년 스위스 월드컵이다. 그 대회를 가장 빛나게 만들어준 것은 바로 헝가리 팀이었다. 당시 헝가리 팀에선 빛이 나는 듯했다. 특히 헝가리와 독일의 결승전은 최고였다. 독일이 이겼지만 독일은 힘과 위압으로 억세게 축구를 해서 이겼다. 헝가리는 정말 아름다운 경기를 했다. 기억나는 선수를 꼽으라면 설명이 필요없는 그 사람, 바로 펠레다."

목표 없으면 이길수 없어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예상한다면.

"글쎄, 챔피언을 꼽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지구 정반대 쪽에서 이렇게 어려운 문제를 물어보러 왔군. 우루과이 사람들이 날더러 애국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할텐데. 우루과이는 객관적으로 우승과는 거리가 멀다. 우선 우승후보로 아르헨티나를 꼽을 수 있다. 브라질이 다섯번째 챔피언이 될 가능성도 크다. 프랑스도 잘 하는 팀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브라질 팬이다."

-한국 국민에게 인사말을 해달라.

"세계적으로 큰 행사인 월드컵 축구대회를 치르는데 좋은 성과를 거두길 희망한다. 내가 겪어본 한국 사람들은 앞으로 전진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이었다. 그게 중요하다. 낙천적으로 생각하라. 우리가 우승할 당시에도 우리는 널리 알려진 팀이 아니었다. 지금의 한국도 마찬가지다. 우리를 몰랐던 브라질 관중은, 아니 전세계 사람들은 우리가 브라질을 꺾고 우승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기겠다는 목표를 정하고 꾸준히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 아무리 기술이 있어도 목표와 욕심이 없으면 이길 수 없다. 축구에서 기술보다 중요한 것이 정신이다. 오랜 기간 감독으로 일하면서 알게 된 것인데 아무리 좋은 선수라도 열정이 없다면 운동장에 있을 필요가 없다."

몬테비데오=장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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