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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딩크호 이대론 안된다 신문선 특별 기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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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9면

역대 월드컵에서 개최국은 모두 1차 예선을 통과하고 2라운드에 올랐다.

만일 한국이 1백일 앞으로 다가온 한·일 월드컵에서 16강에 오르지 못한다면 '월드컵 개최국은 모두 예선을 통과한다'는 전통을 깨는 불명예를 감수해야 한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개최한 대회가 '남의 잔치'가 되고 만다면 이는 참으로 서운한 일이다.

스포츠 정신은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에 승복하는 것이다. 최선을 다했지만 졌다면 누가 뭐랄 것인가. 그러나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면 문제다.

지금 국민들은 답답해하고 있다. 새해 들어 처음으로 가진 38일간의 미주 전지훈련 기간에 한국 월드컵 축구대표팀은 여섯차례의 A매치를 치러 1승1무4패(5득점·9실점)의 초라한 성적을 거뒀다. "우리도 이기는 경기 한번 보고 싶다"며 팬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한국의 초라함은 월드컵 본선에서 우리와 맞설 미국·폴란드·포르투갈의 앞선 경기력 때문에 더욱 두드러진다.

한국이 1승 제물로 삼고 있는 미국은 이탈리아와의 평가전에서 최근의 골드컵과 서귀포 경기 때와는 달리 유럽에서 뛰고 있는 선수를 불러 '정예멤버'를 구성했다.

골드컵 주전 가운데 도노번·아구스·아마스 등 3명만이 베스트 멤버에 포함됐다. 이번 월드컵 우승후보인 이탈리아에 비록 0-1로 지기는 했으나 경기 내용은 흠잡기 어려울 정도로 훌륭했다. 특히 전반은 이탈리아가 쩔쩔맬 정도로 완벽한 팀플레이였다. 굳이 약점을 꼽자면 후반 급격히 떨어진 체력이었다.

북아일랜드를 4-1로 대파한 폴란드도 예상보다 강했다. 전통적으로 힘이 좋은 북아일랜드를 매우 빠른 공·수 전환과 압박플레이로 조여들어갔다.

미드필더와 수비수들이 배후에서 공간을 많이 침투하는 전술구사는 일품이었고, 순간적으로 만들어낸 기회를 골로 연결하는 수준높은 골 결정력을 보여줬다.

스페인과 1-1로 비긴 포르투갈은 전술의 핵 루이스 피구가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좌우에서의 현란한 돌파와 센터링으로 공격을 주도했다. '유럽의 브라질'이란 애칭답게 전체적으로 고른 기량을 보여줬다.

이에 비해 한국은 거듭된 졸전과 골 결정력 부족으로 팬들을 실망시켰다. 전지훈련 기간에 대표팀 주전인 황선홍·유상철·최용수의 J리그 복귀와 부상 선수의 속출로 전지훈련의 성과를 거두기 어려웠다. 또 이천수·박지성 등을 플레이 메이커로 기용하면서 이들의 가능성을 타진했으나 이마저 실패했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정한 A매치데이였던 지난 14일(한국시간)은 한국민으로 하여금 한국 축구의 위상을 바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바로 어떤 팀도 1승을 거두기에 벅찬 상대라는 것이다. 이제 막연한 16강 기대를 버리고 냉철하게 분석하고 대비해야 할 때다.

경기력은 체력·개인기·전술·심리적 요인으로 판가름한다. 한국은 상대팀인 포르투갈·폴란드는 물론 미국에 비해서도 개인기가 분명 떨어진다. 미국을 잡기 위해선 팀워크와 전술을 극대화해야 한다. 개인기는 하루아침에 향상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는 해외파 주전들을 끌어모으고 부상선수들을 조기에 복귀시켜 전술훈련을 하는 것이다. 물론 해외파 선수들을 조기에 귀국시키는 데 따른 기술적 문제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베스트 멤버의 확정을 늦추고 계속 실험만 하다 보면 정작 실전에 뛸 선수들의 조직력을 향상시키기 어렵다.

<중앙일보 축구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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