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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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밤이 깊어갈수록

벽에 걸린 시계 소리는 크게 들린다.

그것은

뚜벅뚜벅 어둠 속을 걸어오는

발소리 같기도 하고

뚝뚝 지층을 향해 떨어지는

물소리 같기도 하다.

그것은

어둠을 한줌씩 물리치는 것 같기도 하고

어둠을 한줌씩 더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도 눈을 뜨면

아무것도 걸어오지 않고

아무것도 떨어지지 않는다.

시계의 바늘은 그저 일정한 간격으로

벽 위에서 돌아가고 있을 뿐이다.

아마 저것은 시계 속의 건전지가 닳아버릴 때까지

일정한 간격으로 끝없이 돌아가리라.

의미도 없이

반성도 없이.

-홍영철(1955~ ),'시계소리'

깊은 밤 어둠 속에서 침묵의 소리를 들으며 번민하던 때도 있었지. 그러나 언제부턴가 우리는 의미 같은 건 묻지 않고 반성 같은 건 하지 않게 됐다. 그저 때가 되면 시계의 건전지를 갈아줄 뿐이다. 이러다가 우리 모두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있게 되는 건 아닐까? 그래서 우리 모두 입학시험을 치고 또 치게 되는 건 아닐까? 의미도 없이, 반성도 없이. 끝도 없이.

김화영<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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