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反테러 조율 韓美 대북 시각차 좁힐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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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20일의 한·미정상회담은 우리의 대북 정책을 미국의 세계 전략에 맞춰가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9·11 미국 테러 이후 우리의 운신의 폭이 전례없이 좁아진 가운데 열리기 때문이다.

미국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확산문제를 반테러전 차원에서 보고 있고, 일본을 동북아 안보의 기축으로 삼으면서 중국·러시아와도 느슨한 협력관계를 구축함으로써 한국의 입지와 전략적 비중은 작아지고 있다.

미국의 대북 정책 골조는 정상회담의 사전 논의과정에서 잘 드러난다.

미국이 최대 현안으로 보는 북한 WMD문제에는 한국 정부도 개입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우리측은 "북한의 WMD 위협에 미국과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며 대화를 통한 조속한 해결을 강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 북한에도 WMD문제 해결을 촉구할 것이라고 한다. "북한 WMD는 북·미간 문제"라는 우리의 기본 틀이 바뀌는 것이다.

북한의 재래식무기 감축과 후방배치 문제를 미국이 들고 나오면 미국의 적극적 개입을 용인할 수밖에 없다는 분위기다.

재래식무기는 기본적으로 '남북문제'라는 정부 입장에 변화를 의미한다.

미국은 우리가 북한을 배려해 자신들을 설득하려 한 데 대해 강한 불만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정부는 한·미동맹이 가치와 이념을 공유한 글로벌 파트너십임을 강조할 예정이다. 여기에는 미국의 테러전에 대한 적극적 협력의 뜻도 담겨 있다.

미국은 우리의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를 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에 대해선 전제조건 없는 대화 재개 의사도 밝힌다고 한다.

이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경의선 도라산역 방문과 더불어 한국 달래기의 색채가 짙다.

부시가 중앙일보와의 회견에서 밝힌 대북 경제교류 등의 '당근'까지 제시할지는 미지수다.

미국의 통상 문제에 대한 공세도 만만찮을 것 같다. 미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율 인하나 유전자조작농산물(GMO)수입표시제도 완화를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미국의 대북 메시지는 강·온 양면으로 짜여지고, 한·미간 대북 접근법도 접점을 찾을 전망이다. 그러나 이는 우리의 햇볕정책에 상처를 남길 수도 있다. 북한이 자주성을 내세워 남한과의 대화를 기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회담의 성공 여부에 대한 평가는 어디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달려 있다. 정부 관계자는 "부시 대통령의 부정적 대북 인식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회담은 실패로 기록될 것이지만, 대북 정책 조율이나 한반도 긴장완화 측면에서는 성공한 회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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