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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제2부 薔薇戰爭 제1장 序 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장보고는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그 불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신표의 표시로 떨어져나간 불상의 머리부분은 아우 정년에게 주었으므로 장보고가 갖고 있는 불상은 머리는 없고 몸체만 남아있는 불완전한 불구의 몸이었다.
"몸은 종처럼 부리되 마음만은 임금처럼 받드시오."
소중히 품속에 간직하고 다니던 불상의 모습을 바라본 순간 장보고는 문득 그 불상을 선물로 주었던 낭혜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낭혜가 했던 이 말은 그가 적산원에 머물면서 신도들에게 했던 유일한 강설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장보고에게 목이 부러져 몸체와 머리가 따로 떨어져나간 불상을 선물로 주면서 낭혜는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았던가.
"몸은 버려도 좋으나 머리만은 소중히 보관하십시오."
낭혜화상의 그 말은 '마음이 곧 부처'이니 몸은 종처럼 부리더라도 마음은 임금처럼 소중히 여기라는 말의 또 다른 표현으로 생각되며, 따라서 몸은 버려도 좋으니 머리만은 소중히 간직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인 장보고는 그러나 그 불상의 머리를 아우 정년에게 서슴없이 신의의 표시로 주어버린 것이었다.
그만큼 장보고는 아우 정년을 각별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보다도.
장보고는 목이 없는 불상을 바라보면서 생각하였다.
마지막으로 정년과 헤어지기 전 두 사람은 낭혜화상을 찾아갔을 때 그로부터 들었던 뜻밖의 말을 떠올렸던 것이다. 두 사람의 모습을 말없이 한참동안 바라보던 낭혜는 갑자기 붓을 들어 먹을 듬뿍 묻힌 후 종이 위에 글자 하나를 써 내렸다.
장보고와 정년은 낭혜가 쓴 그 글자를 쳐다보았다. 그것은 힘력(力)자였다. 밑도 끝도 없이 글자하나를 쓴 뒤 낭혜는 정년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이것이 그대의 명운이요."
낭혜는 다시 종이위에 힘력 자 세 개를 연달아 써 내렸다. 그리고 나서 그는 다시 말하였다.
"이처럼 힘 세 개가 그대를 구해줄 것이오."
일찍이 부석사에 머무르고 있을 때 화랑이 되어 찾아온 김흔과 김양에게 단평(旦評)을 내려주었던 낭혜가 아니었던가. 그때 낭혜는 두 사람의 장래에 대해서 미리 알고 싶어 왔다는 말에 당장이라도 주장자를 들어 후려칠 기세로 분노했었다. 그러나 김흔의 재치로 흥분을 가라앉힌 낭혜는 김흔에게는 '풀초(艸)자 세 개가 너를 구해줄 것이다'라고 말하였으며, '풀초 세 개를 통해 성(聖)을 이룰 것이다'라고 예언하였던 것이었다. 그리고 나이어린 김양에게는 '계집(女) 세 명을 통해 반드시 세(世)를 이룰 것이다'라는 예언을 내려주었던 것이다. 그것이 5년 전의 일이었다.
그렇다면 낭혜는 어찌하여 묻지도 않은 정년과 장보고에게 스스로 입을 열어 장래를 점쳐주었던 것이었을까. 그것은 앞으로 운명적으로 만나게 될 네 사람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꿰뚫어본 낭혜가 참언을 통해 두 사람이 지켜야할 평생의 경구를 미리 가르쳐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그러자 장보고와 정년은 무릎을 꿇고 앉은 채 낭혜에게 물어 말하였다.
"내 아우 정년은 말을 잘 타고, 창과 칼에 능하며, 힘이 또한 천하의 역사(力士)이므로 스님의 말씀대로 힘력 자 세 개가 구해줄 것임을 잘 알겠나이다. 하오면 스님께 다시 묻겠습니다. 제 아우는 힘력 자 세 개로 도대체 무엇을 이루겠나이까."
장보고가 묻자 낭혜는 다시 붓을 들어 종이 위에 글자하나를 써 내렸다. 두 사람은 낭혜가 쓴 글자를 쳐다보았다.
'의(義)'.
그것은 옳을 의(義)자였다. 그러니까 낭혜의 예언은 정년이 힘을 통해 협(?)을 거쳐 신의(信義)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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