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대통령 한국방문 … 국빈급 → 실무급 격하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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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8일 방한하는 시몬 페레스(87) 이스라엘 대통령의 방문 형식을 두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이스라엘 언론은 한국 정부가 페레스의 방문을 국빈방문(state visit)에서 가자지구 구호선 총격 사건 이후 공식 실무방문(official working visit)으로 격하했다고 이스라엘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 등은 지난달 31일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로 가는 구호선에 총격을 가해 사망자가 발생하자 한국 정부가 이 같은 결정을 통보해 왔다고 7일 보도했다. 여기에는 아랍권을 비롯한 이슬람 국가들이 격을 낮추라는 요구가 반영됐을 것으로 보인다고 이스라엘 언론은 전했다.

하레츠에 따르면 총격사건 발생 후 한국 정부는 한국 내에서 발생할 항의 시위 등 안전 문제를 들어 방문 연기도 제안했다.

한국 정부는 또 친팔레스타인 단체들이 페레스가 묵을 호텔과 일정 정보를 입수해 항의시위를 준비하고 있다는 내용까지 이스라엘에 전달했다. 실제로 페레스의 방한 직후로 예정됐던 베트남 방문 일정은 베트남 정부에 의해 취소됐다.

하지만 페레스는 “현 상황에서 우리가 먼저 방문을 취소할 순 없다”며 격하를 감수하면서까지 방한을 강행했다고 한다. 결국 방한이 결정되자 일정 중 서울대에서 예정됐던 명예박사학위 수여식과 학생들과의 간담회가 취소됐고, 한국 정부는 페레스에 대한 경호 수위를 높이기로 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보도가 나가자 한국 주무부처인 외교통상부는 내용을 전면 부인했다. 외교부 담당자들은 “원래부터 공식 실무방문으로 예정돼 있던 행사였다”며 “일정이나 보안 수준을 변경한 일도 없고 명예 박사학위 수여식도 처음에 논의되다가 이스라엘 측이 철회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익명의 외교부 관계자는 “이스라엘 정부가 약속을 깨고 현지 언론에 내용을 흘렸다”고 전했다. 해당 기사를 쓴 하레츠의 바락 라비드 기자 역시 본지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름을 밝힐 순 없지만 믿을 만한 정부 관리로부터 전해들은 것”이라고 기사 내용이 사실임을 주장했다. 이스라엘 언론들은 6일까지 “페레스가 양국 간 외교·경제·국방 등에서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국빈 방문’한다”고 보도했었고, 이날 이스라엘 대통령궁에선 기자간담회가 열린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이 커지자 이스라엘 대통령궁은 7일 보도자료를 내 “페레스 대통령의 방한은 올해 초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초대로 이뤄졌다”며 “방문의 격이 바뀐 일은 없으며 이번 방문은 최고 수준의 의전으로 치러질 것”이라고 언급했다. 대통령궁의 아이앨릿 프레시 대변인도 본지와의 통화에서 “방문의 격을 바꾼 일이 없다”고 강조했다.

페레스 대통령은 이스라엘 노동당을 창당했고 국방·재무·외무장관과 총리를 역임한 후 2007년 대통령에 선출됐다.

온건하고 타협적인 스타일로 외무장관이던 1993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정인 오슬로협정을 체결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페레스의 방한은 이스라엘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이다.

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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