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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그대, 알알이 고운 시 이삭 물고 와
잠결에 떨구고 가는 새벽
푸드덕
새 소리에 놀란 나뭇잎
이슬을 털고
빛무리에 싸여 눈뜬
내 이마 서늘하다
-정희성(1945~ ),'시가 오는 새벽'
"말이 곧 절이라는 뜻일까/말씀으로 절을 짓는다는 뜻일까/지금까지 시를 써오면서 시가 무엇인지/시로서 무엇을 이룰지/깊이 생각해볼 틈도 없이/헤매어 여기까지 왔다"고 '詩'를 파자(破字)하던 이 시인에게 문득 시가 찾아오는 순간은 빛나도다. 익은 것을 '떨구는' 하강운동과 날아오르는 '새소리'의 상승운동이 직관 속에서 마주쳐 결정(結晶)시킨 '이삭'과 '이슬'. 기나긴 어둠의 끝에 동트는 이런 시의 새벽을 말라르메는 잘 안다.
김화영<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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