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급해진 정부… 對美외교 총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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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 이후 미국 지도부의 대북 파상 공세가 계속되자 정부는 대미 외교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재외공관장 회의 참석차 귀국한 양성철(梁性喆)주미 대사를 7일 서둘러 귀임시켰고, 대통령·외교부장관도 데니스 블레어 미국 태평양사령관·토머스 허버드 주한 미대사와 각각 얼굴을 마주했다.
정부가 급박하게 움직이는 것은 단순히 정상회담 발표문만 합의했다고 안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직설화법'이 특징인 부시 대통령이 예기치 못한 발언을 할 우려가 있는 것이다. 그가 지난해 3월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때 "북한 지도자(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 대해 회의감을 갖고 있다"고 한 것처럼 이번 방한에서도 대북 강성 발언을 하면 한반도 정세는 급랭할 수 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최근 두번이나 '전쟁'이란 용어를 썼다.'전쟁을 막기 위해선 햇볕정책과 대화가 유일한 대안'이라는 취지지만 미국의 대북 경고에 대한 위기의식이 배어 있다.
그렇다고 전쟁의 조짐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정부 관계자들은 강조한다. 미국이 선제 공격을 않을 것이라고 한 데다 북한 내에서도 이상 징후가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이 정부 내에서 미묘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미국의 대북 대화 정책 기조에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당초의 낙관적인 분위기는 한풀 꺾였다. 박선숙(朴仙淑)청와대 대변인은 7일 북·미관계와 한반도 정세에 대해 "낙관도 비관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임성준(任晟準)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5일 "부시 대통령이 진전된 대북 대화 의지를 밝힐 것"이라고 한 것에 비하면 한참 후퇴한 것이다.
그러면서 부시 대통령을 감정적으로 자극하지 않으면서 설득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金대통령이 재외공관장 만찬에서 한·미동맹 강화를 두차례나 강조한 것도 그 일환이다. 한·미동맹 강화는 부시가 방한 전 일본에 들러 미·일 동맹을 아시아 방위의 기축이라고 선언할 것이란 전망과도 맞물려 있다.
사회 일각의 반미(反美)분위기에 대해서는 金대통령이 직접 제동을 걸고 나섰다."우방간에 정책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반미는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못을 박았다. 이는 "부시 대통령은 햇볕정책을 흔들지 말라"고 한 김근태 민주당 고문의 국회 연설이 한·미 정상회담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정부 내의 판단을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정부가 미군 관련 시설에 대한 경계를 강화한 것도 이런 판단과 무관치 않다.
정부의 대미 협상태도도 다소 바뀌었다."북한과 대화하도록 미국을 설득하겠다"는 얘기는 쑥 들어갔다. 대신에 남북대화나 북·미 대화에 북한이 나오도록 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태도가 남북관계를 진전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란 의견까지 제기되고 있다. 북한은 부시 대통령의 연두 교서 이후 오히려 저자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오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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