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검장 놓고 진통 거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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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검사장급 이상 검찰 간부 인사의 내용을 살펴보면 현재 검찰이 처한 위기상황을 극복하려 한 흔적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지역적으로 균형을 갖췄고, 각종 게이트에 대한 부실 수사 책임자를 철저하게 문책했으며, 정권교체 후 한직으로 밀려났던 검사장들을 중앙 보직에 배치한 것은 평가할 만한 부분이다. 흐트러진 조직의 분위기를 쇄신하고 국민의 불신을 해소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부 요직의 지역성 갈등을 절충으로 해결하다 보니 검찰 내부의 신망이나 능력이 검증된 인사가 적재적소에 배치됐다고 보기 힘들다.
또 외형상 그런대로 모양은 갖췄지만 난산(難産)과정에서 부각된 여권과 검찰 수뇌부의 갈등 요인이 잠복한 상태여서 앞으로 검찰이 정치적 중립성 확보 의지를 어떻게 보여줄지 주목된다.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이용호 게이트' 2차 수사를 책임졌던 대검 중수부장인 사시 14회의 유창종(柳昌宗)검사장을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으로 발령낸 것은 충격적인 조치다.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은 초임 검사장급 보직이다.
2000년 정현준·진승현씨 금융비리사건 때 서울지검장으로 있던 김각영(金珏泳)대검차장을 부산고검장으로 전보 조치한 것도 부실 수사에 대한 책임을 물은 것이다. 검찰 내 2인자 격인 대검 차장을 지방고검장에 임명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또 신승남(愼承男)전 검찰총장 때 참모로 있던 대검 간부 8명 중 김원치(金源治)형사부장을 제외하고 7명이 지방 검사장으로 발령난 것도 눈에 띄는 부분이다.
◇반전에 반전=올해로 예정된 지방선거 및 대통령 선거사범 수사와 부정부패 수사를 최일선에서 지휘할 서울지검장 자리를 놓고 여권과 검찰 사이에는 첨예한 이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李총장은 서울지검장 후보로 비(非)호남 출신 인사를 천거한 반면 여권에서는 정충수(鄭忠秀)수원지검장 카드를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대통령 결재가 나기 직전까지 고심을 거듭하다 경기도 출신으로 지역색이 상대적으로 적은 이범관(李範觀)인천검사장이 서울지검장으로 낙점됐다.
또 당초 법무차관에는 김학재(金鶴在)청와대 민정수석이 올랐으나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직전 한부환(韓富煥)대전고검장으로 전격 교체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호남 출신의 金수석이 요직으로 복귀할 경우 정치적 중립성 시비가 일 우려가 있다"는 여론의 비판을 우려한 결과라는 후문이다.
◇비(非)호남 간부 발탁=사시 12회의 한부환 대전고검장과 이종찬(李鍾燦)대구고검장이 법무차관과 서울고검장으로 재입성했다.
韓고검장은 지난해 10월 이용호씨에 대한 서울지검의 불입건 결정 의혹을 조사하기 위해 설치된 특별감찰본부 본부장을 맡았으며, 李고검장은 손꼽히는 특수 수사통이다. 또 검찰 인사를 담당하는 법무부 검찰국장과 선거 수사를 지휘할 대검 공안부장에 충청도 출신의 김진환(金振煥·사시 14회)대구지검장과 이정수(李廷洙·사시 15회)대전지검장이 전보된 것도 눈길을 끈다.
박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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