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균 기자의 푸드&메드] ‘공부 잘하는 약’ ‘살 빼는 약’의 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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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의약품안전청은 최근 마약류 의약품인 메칠페니데이트가 일부 청소년에게 ‘공부 잘하는 약’으로 오인되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메칠페니데이트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치료 약이다. 국내에선 엉뚱하게도 학습증진 약으로 잘못 알려졌다.

건강한 아이들이 이 약을 복용하는 것은 백해무익하다. 복용자 중 상당수가 속이 불편하고 가슴이 심하게 뛰며 붕 뜬 듯한 느낌을 경험한다. 당일치기 공부를 위해 이 약을 먹는 것도 득보다 실이 많다. 다음날 괜히 흥분되고 불쾌한 느낌이 남아 시험을 망치기 십상이다.

메칠페니데이트 외에도 마약류로 분류되는 의약품이 상당수 있다. 특히 ‘살 빼는 약’ ‘피로회복제’ ‘술 깨는 약’ ‘머리가 맑아지는 약’ ‘근육 강화제’ 중엔 이런 약이 적지 않다.

유엔 마약통계국(INCB)이 펴낸 2006년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향정신성(마약류) 식욕감퇴제 복용량은 브라질(1000명당 12.5명)·아르헨티나(11.8명)에 이어 세계 3위(9.8명)다. 비만율이 높고 마약 범죄가 잦은 미국보다 순위가 앞서는 것이다.

펜터민·펜디메트라진·디에칠프로피온 등 향정 식욕감퇴제는 흔히 ‘살 빼는 약’으로 불린다. 현행법상으론 판매가 허용된 약이다. 그러나 이들은 중추신경흥분제·환각제 등 마약 성분을 포함하는 분명한 마약류다. 중독성이 있고 장기 복용하면 환각 증상과 행동·기억·정서 장애, 고혈압, 설사, 뇌손상, 정신질환까지 유발 가능한 위험천만한 약이다. 반드시 전문의의 처방을 받아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도 국내에서 2006년 한 해에 345억원어치가 판매됐다.

소비자단체인 소비자시민모임이 식약청의 의뢰를 받아 15세 이상 남녀 1125명을 조사했다. 이에 따르면 “향정 식욕억제제는 4주 이내로 복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52.9%에 달했다.

또 조사대상자의 절반이 “향정 식욕억제제를 3개월 이상 복용하면 심각한 폐동맥 고혈압·심장질환 등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현재 향정 식욕억제제를 복용 중인 사람에게 강조하고 싶은 것이 더 있다. 첫째, 에페드린·트피라메이트·플루옥세틴 등과는 절대 함께 복용해서는 안 된다. 둘째, 속성으로 살을 빼려고 두 종류 이상 향정 식욕억제제를 함께 먹는 것은 극히 위험하다. 외국에선 펜터민과 펜디메트라진(앞글자를 따서 ‘펜펜’이라고 불림)을 병용하다 환자가 숨진 사례도 발생했다. 셋째, 임신부나 가임기 여성은 복용을 삼간다. 당사자나 태아에 대한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아서다.

향정 식욕억제제를 두 종류 이상 동시 처방하는 것을 금지하고, 허가 외 약물과의 병용 처방 금지, 처방일수·처방 용량을 제한하는 ‘RDC 58’ 결의안을 채택한 브라질의 조치를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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