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아시아나 다시 불붙은 노선싸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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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인천~런던의 주3회 증편을 놓고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간에 노선 쟁탈전이 다시 불붙었다. 노선 배분권을 쥐고 있는 건설교통부가 원칙없이 대응해 두 항공사의 노선 다툼이 해묵은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항공 노선 배분의 실태와 문제점을 따져본다.
◇밀실 행정 논란=건교부는 4일 "지난달 영국과의 항공회담에서 확보한 주3회 런던 노선을 나눠 주기 위해 2일까지 신청서를 제출하라는 공문을 지난 1일 국내 항공사에 보냈다"며 "이번주 내 공정히 심사해 배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대한항공의 얘기는 이와 다르다. 공문을 받기 전인 지난달 30일 건교부 간부가 회사 고위 인사에게 전화해 "아시아나항공에 노선을 주기로 윗선에서 결정했으니 양해해 달라"고 미리 통보했다는 것이다.
대한항공은 "항공 노선을 특정 항공사에만 배분하는 건교부의 항공 정책은 받아들일 수 없는 밀실 행정"이라며 "아시아나에 준다면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건교부 함대영(咸大榮)항공국장은 "이미 런던 노선 배분 방안을 내정했다는 것은 근거 없는 주장"이라며 "공정하게 심사해 결정하겠다"고 답변했다.
◇원칙 없는 노선 배분=정부는 1999년 규제 개혁 차원에서 항공법에 근거한 '국적 항공사 경쟁력 강화 지침'을 없앴다. 이 안에 포함돼 있던 ▶복수 취항 허용▶복수 취항 때 운항 횟수▶신규 노선 배분 등의 구체적인 기준이 함께 사라졌다.
그 대신 건교부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간단한 내부지침만 마련했다. 이 지침에는 ▶신규 노선의 경우 장거리는 대한항공, 단거리는 아시아나에 우선 배정▶두 항공사가 함께 취항하는 기존 노선의 증편은 격차가 매우 큰 경우 후발 항공사에 우선 배분▶복수 취항은 시장 규모가 성숙된 경우에만 허용하며 후발 항공사에 주4회 우선 배정 등의 내용이 들어 있다.
런던 노선과 관련, 대한항공은 "승객 수가 연 7만5천명에 불과해 시장 규모가 성숙되지 않았기 때문에 복수 취항 기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반면 아시아나는 "런던 노선은 이미 탑승률이 80%를 넘어 심각한 좌석난을 겪고 있다"며 "영국이 이 노선에 국내 항공사의 복수 취항을 허용한 만큼 이번 증편분은 당연히 우리 몫"이라고 밝혔다. 두 항공사의 주장이 팽팽히 맞선 것이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건교부 관계자는 "재정이 취약한 아시아나의 상황을 감안하다 보니 그동안 공정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을 구석이 없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정부와 두 항공사·학계 등이 참여해 공정한 노선 배분 기준을 만들 필요가 있으나 규제 부활이라는 비난을 우려해 말도 꺼내지 못하는 처지"라고 덧붙였다.
미국의 경우 '오픈 스카이(open sky)' 정책을 통해 항공사가 자유롭게 노선을 결정하고 있다. 유럽은 대부분 1국 1항공사 체제여서 복수 취항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대한항공 최준집(崔準集)상무는 "명확한 기준에 따른 투명한 배분이 이뤄져야 소모적인 논쟁이 사라질 것"이라며 "노선 배분 때마다 건교부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에선 장기적인 경영 전략을 세우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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