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중독과 금단증세 못보게 했더니 짜증·무기력 인터넷·게임 중독자도 비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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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5면

미국의 과학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은 최근호에서 '텔레비전 중독'을 특집기사로 다뤘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 TV 시청시간은 주중의 경우 3시간13분, 일요일엔 4시간23분에 이른다고 한다. 인간의 수명을 75년으로 치자면, 우리는 무려 11년을 TV 앞에서 보낸다는 계산이다.
현대인들이 여가시간의 반 이상을 TV앞에서 보낸다는 것은 새로울 것도 없는 얘기지만, 스스로를 'TV중독'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늘어간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1999년 갤럽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성인의 40%, 청소년의 70%가 자신이 지나치게 TV를 많이 본다고 대답했으며, 성인의 10%는 'TV 중독'이라고 자신을 진단했다.
미디어 연구학자들은 TV가 단순히 가족들 사이의 대화를 줄이고 친구들과의 대면적 접촉 기회를 줄임으로써 사회적 관계 형성에 부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 뿐만 아니라, 담배나 마약처럼 문자 그대로 '중독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미 럿거스대 언론학과 로버트 쿠비 교수는 TV를 과도하게 시청하는 사람들의 허리에 호출기를 단 후 하루에 6~8번씩 수시로 호출을 했다. 호출이 올 때마다 피험자들은 하고 있던 일과 당시의 감정상태를 상세히 기록했다. 그 결과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들을 발견했다.
TV를 시청하고 있는 동안 사람들은 편안함과 나른함을 느끼곤 했는데, TV를 끄면 편안함은 이내 사라지지만 수동적인 감정 상태를 동반한 나른함은 계속 지속되더라는 것이다.
또 TV를 오래 시청할수록 TV가 주는 기쁨은 점점 줄어들지만, TV를 끈 후 느끼는 불안감은 점점 커진다고 한다. 다시 말해 TV를 오래 볼수록 재미는 점점 덜하지만 끄지 못해 보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무엇보다도 TV가 마약처럼 중독성이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금단증세를 동반한다는 사실이다. 시카고 대학 개리 스테이너 박사팀의 실험 결과에 따르면, TV 중독 증세를 보이는 사람들에게 TV를 시청하지 못하게 했더니, 신경질을 자주 내고 아무 일도 하지 못한 채 거실을 배회하는 증세를 보였다.
TV 중독이 최근 과학자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끄는 이유는 인터넷이나 게임에 과도하게 빠져있는 사람들도 TV 중독과 비슷한 증세를 보이기 때문이다. TV나 컴퓨터가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지만, 과도한 TV시청이나 인터넷 서핑이 인체에 중독적인 성향을 유발한다면 심각한 사회문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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