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水四見'의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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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상대성 이론'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보통 아인슈타인부터 떠올린다. 그러나 상대성에 대한 개념은 아인슈타인 이전에 이미 갈릴레이에게서 나왔으며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이와 관련하여 많은 경험을 하고 있다.
서 있는 버스에 타고 있는데 옆의 버스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면 마치 내가 뒤로 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버스의 경우에는 길바닥을 보면 버스가 어느 쪽으로 움직이는지 분별해 낼 수 있지만, 우주선을 타고 있다면 그것마저 불가능하다. 주위에 우주선의 운동을 가늠할 물체가 없다면, 우주선의 속도라는 개념조차 성립되지 않는다. 모든 속도는 상대속도이기 때문이다.
기차를 타고 가는 사람이 물을 마시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기차 안에 있는 사람은 물이 정지해 있다고 할 것이고,기차 밖에 서 있는 사람은 물이 시속 1백㎞의 속력으로 달려간다고 할 것이다. 그러면 어느 쪽이 맞는가. 둘 다 맞는 이야기다. 속도란 관측하는 사람과 관측되는 대상 사이의 관계에 의해서만 정의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움직이는 기차나 버스 등과 같이 좀 특별한 상황에서만 상대론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뜰 앞의 잣나무가 정지해 있느냐는 질문에도 상대론은 적용된다.대부분은 잣나무가 당연히 정지해 있다고 답변할 것이다. 우리는 태어난 이후 한 번도 지구 표면을 떠나본 적이 없으니, 그건 너무도 당연한 답일지 모른다. 하지만 지구는 태양 주위를 초속 30㎞의 속력으로 공전하고 있다. 태양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뜰 앞의 잣나무가 서울에서 대전까지 5초면 갈 수 있는 엄청난 속력으로 달려가는 것으로 보인다.
이상의 논의들이 모두 갈릴레이에서 비롯된 고전상대론에 대한 것이다.여기서는 3차원 공간과 1차원 시간을 관측자에 의해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것으로 상정한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론은 시간과 공간이 서로에 의존하면서 관측자에 따라 변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따로 분리돼 있는 3차원 공간과 1차원 시간이 아니라, 서로 얽혀있는 4차원 시공간이 전개된다. 그리고 관측하는 사람 수만큼의 서로 다른 시간이 존재한다.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속도로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자신의 운동 상태에 따라 다른 속도로 흘러가는 시간을 갖는다.
그러므로 하나의 사건에 대해서도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보는 사람의 수만큼의 진술이 가능해진다. 결국 세계를 바라보는 사람 수만큼의 다른 세계가 존재하게 된다.
불교에서는 이를 일수사견(一水四見)으로 비유한다. 같은 물이라도 천상의 사람이 보면 유리로 장식된 보배로 보이고 인간이 보면 마시는 물로 보이며 물고기가 보면 사는 집으로 보이고 아귀가 보면 피고름으로 보인다는 것이다.하나의 물은 모든 주관에게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인식 주관과 물이라는 객관 사이에 성립하는 인연에 의하여 서로 다른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부처가 8만4천의 법문을 펼친 이유도 서로 다른 8만4천의 중생세계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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