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몸싸움·난장판…젊은 의원들의 구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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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17대 국회의원은 모두 299명이다. 그중 초선의원이 187명이다. 정확히 전체의 62.5%다. 17대 국회에 이처럼 초선이 많은 건 새 정치를 향한 국민적 염원 때문이었다. 낡은 패거리 정치에 대한 염증이 너무도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제 열린우리당의 국가보안법 폐지안을 상정한 국회 법사위의 모습은 이전의 국회와 조금도 다를 게 없었다. 오히려 한 술 더 떴다. 욕설과 몸싸움은 기본이었고 '손바닥 상정'이라는 기발한 수법까지 등장했다. 의원 보좌관의 뺨을 때리는 일도 벌어졌다. 현장의 주인공 모두는 17대에 들어온 초선의원들이었다. 정치개혁을 그토록 부르짖던 바로 그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별로 부끄러워할 줄 몰랐다. 한쪽에선 박수를 쳐대고 환호를 지르며 퇴장했다. 다른 한쪽에선 구호와 욕설을 쏟아냈다. 나는 선(善)이요, 상대는 악(惡)이라는 주장뿐이었다. 더도 덜도 말고 한국 정치의 현주소였다.

그 와중에 천정배 열린우리당 원내대표가 어제 보안법 폐지안의 연내 처리 유보를 선언했다. 연말 임시국회를 열어 처리하자고 했다. 그때까지 보안법 개폐 문제 처리를 위한 입법청문회와 국민대토론회를 열자고 제안했다. 사실상 원점 회귀다. 폐지안이든, 개정안이든 임시국회에서 다시 상정해야 한다. 천 대표는 보안법 폐지안 상정 하루 전에도 그 같은 방침을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그저께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든 보안법 상정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천 대표는 보안법 폐지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이 무슨 해괴한 말인지 알 수 없다. 욕설과 몸싸움으로 보안법 폐지가 생명력을 얻는다니 국회의 절차, 존엄은 물론 이를 지켜보는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는 말이다. 열린우리당이 지지세력 결집을 위해 이런 식의 정치적 쇼를 벌였다면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나라 안팎의 사정이 한가롭지 않다.

지금이라도 여야는 합리적 판단을 해야 한다. 국회의장의 충고는 양쪽이 받아들일 만하다. 야당도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임시국회 일정을 정해 합의로 처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