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런 개각 왜 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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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DJ식 인사는 장기판의 말 옮기기 같다고 한다. 장기판의 말처럼 여기 저기 자리를 옮겨주거나 재기용하는 게 김대중 대통령의 인사 패턴이라는 것이다.

그런 여론 평판에는 "개각 때면 민심과 따로인 채 내 마음대로의 오기(傲氣)가 두드러진다"는 비판도 깔려 있다. 1.29 개각 및 청와대 개편은 이런 양상을 반복하고 있다. 이한동 국무총리의 유임과 박지원 전 정책기획수석의 청와대 복귀는 이같은 평판과 딱부러지게 어울린다.

그런 만큼 DJ정권의 핵심 자리 중 17개가 바뀌었는데도 참신성과 거리가 멀다. 그동안 국민은 보물 발굴 의혹 등 겹겹이 쌓인 권력 부패 의혹으로 엉망인 국정 분위기의 쇄신을 위해 '신선한 발탁 개각'을 주문했다. 오락가락한 처신을 보인 李총리를 내각의 간판으로 내세워선 국민 신뢰를 얻기 힘들다는 진단도 내렸다.

DJ정권 주변에 '끼리끼리 뭉치기 인사'의 흔적을 없애고 초당적이고 탕평(蕩平)의 기운이 감돌게 해달라는 부탁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이런 국민적 기대를 저버렸다. 이런 개각, 이런 인선으로 어떻게 성난 민심을 달래고 국운융성 목표에 동참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이런 정도라면 무엇 때문에 개각을 예고했고, 왜 개각을 했나'하는 물음이 절로 나온다.

대선.지방선거의 중립을 위한 현역 의원들의 소속 정당 복귀 원칙도 뒤죽박죽이다. 민주당 의원들에게 그런 잣대가 적용됐을 뿐 이한동 총리와 한승수 외교통상부 장관은 남았고, 신국환 산업자원부 장관은 당초 자민련 몫으로 내각과 인연을 맺었다. 때문에 탈(脫)정치 내각이기는커녕 'DJP+α(민국당)'의 정계개편 카드를 다시 꺼내고 있다는 의심 섞인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총체적으로 탈정치 중립내각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허무하게 무너졌다.

'왕(王)수석에서 왕특보'라는 바뀐 별명으로 박지원 특보가 권력 핵심에 재등장함으로써 청와대의 기능과 역할분담이 뒤틀릴 소지도 있다.

외교.안보.대북 관련 업무는 임동원 특보가, 정치.공보 관련 업무는 朴특보가, 경제 관련 조정업무는 전윤철 비서실장이 맡는, 특보와 비서실장이 병렬적(竝列的)관계에 놓이는 기형적 운영이 예상된다.

청와대 대변인(여성)과 정무수석 기용에 파격적인 요소가 있다지만 '朴특보의 존재'가 있기에 그런 인사가 가능했다는 지적도 나올 것이다.

개각에 국정의 안정성을 우선했다는 부분도 홍순영 통일.최경원 법무부 장관의 경질에선 맞지 않는다. 햇볕정책을 새롭게 가다듬기 위해 洪장관을 4개월 만에 바꿨다고 한다.

그러나 洪장관이 대북협상의 원칙을 고수한 탓에 화난 북측을 달래기 위해 경질했다는 지적은 정권 차원에서 해명해야 할 과제다. 8개월 만에 그만둔 崔장관의 경우도 개운치 않다. 호남 출신을 후임에 기용한 것은 TK 출신 검찰총장을 견제하려는 권력관리의 의도가 있다는 분석 때문이다.

이같은 여론의 시각과 비판들로 인해 개각을 통해 임기 말 정책 추진력을 회복하려 했던 목표에는 차질이 올 수밖에 없다. 金대통령은 민심 체감과 해법에 허점이 있다는 비판을 겸허히 수용해 난국 돌파의 중지를 다시 모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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