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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이 스포츠로 자리잡으려면] 上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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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한국기원이 대한체육회의 인정단체가 되면서 바둑은 스포츠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한국기원은 ▶소년기사들의 진학문제와 병역문제가 해결되고 ▶바둑이 전국체전 등의 공식 종목이 되고 ▶학교나 기업이 바둑부를 만들고 ▶더불어 바둑 지도자의 수요가 크게 느는 등 파급효과에 대해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한국기원은 이런 기대에 앞서 팬들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이 있다. 모든 스포츠에서 관중은 가장 중요한 요소이지만 바둑계는 지금까지 이 점을 소홀히 해왔다. 한국기원이 스포츠로 새 단장을 하고 새롭게 팬들을 맞기 위해 먼저 해야 할 일이 몇가지 있다. 그 첫째가 바둑대회의 전면 개편이다.

현행 프로바둑대회는 왕위전 등 정규 국내대회(10개)와 잉창치배 등 국제대회(8개), 그리고 신예대회(3개)와 여류대회(2개)가 있다. 이외에 9단들만 출전하는 대회나 시니어들의 대회, 그리고 시.도대항전 같은 이벤트성 대회들이 줄을 잇는다.

이 대회들은 저마다 평균 '1년'의 기한을 갖고 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시작에서 끝날 때까지 1년이 걸린다는 얘기다. 그 많은 대회들이 시차를 갖고 출발해 1년씩 대회를 끌고 간다(삼성화재배나 후지쓰배는 5개월 만에 끝난다).

이건 아주 오래된 관행이다. 결승 5번기만 치르는 데도 2,3개월씩 걸린다. 그러나 팬의 입장에선 너무 늘어져 재미가 없다. 또 무슨 대회가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바로 감이 오지 않기 때문에 재미를 느끼기 힘들다.

팬들은 고사하고 한국기원의 담당직원이나 취재기자조차 대회 진행상태를 일일이 꿰고 있기 어렵다.

지금의 병렬식 대회개최를 직렬식으로 바꿔야 한다. 다시 말해 대회는 시작하면 바로 끝나야 한다.

예를 들어 1월 초에 국수전이 시작되면 보름 이내에 끝나고 그 다음 패왕전이 시작되고 2월엔 왕위전과 세계대회인 춘란배가 있고 3월엔 명인전과 후지쓰배가 열리는 식이 돼야 한다는 얘기다. 6개월이 지나면 성적표가 나오고 1년이 지나면 시즌이 끝난다. 시즌과 시즌 사이에 이벤트가 있다.

팬의 입장에서 보면 이게 명쾌하고 눈에 확 띈다. 테니스대회나 골프대회 등 소위 개인전으로 펼쳐지는 외국의 대회들에서 배울 점은 대회가 시작되면 질질 끌지 않고 바로 끝을 낸다는 점이다.

'1년대회'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보름이나 한달 만에 후딱 끝나버리는 대회가 섭섭하겠지만 바둑이 스포츠가 된 이 시점에선 생각을 바꿔야 한다.

바둑대회를 바꾸려면 관전기 연재 문제나 스폰서 관계 등 연구하고 해결해야 할 점이 많다. 중국.일본과의 구체적인 협의가 이뤄져야 할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한.중.일 3국의 선수들이 함께 대회를 펼치기에 바둑보다 더 좋은 종목은 없기 때문이다.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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