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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해신 - 제1부 질풍노도 (124)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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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일관 품여는 더 이상 물러설 수가 없었으므로 입을 열어 말하였다.

"태백성은 하늘에서 해와 달 다음 세 번째로 밝은 별이라고 소인은 이미 말씀드렸나이다. 하늘에는 해가 둘이 없고 오직 하나가 떠있을 뿐으로 자고로 하늘에 뜬 해는 대왕마마를 가리키고 있음인 것이나이다."

품여의 말은 사실이었다.

태양은 예부터 나라의 임금을 가리키는 말로 '일거월제(日居月諸)'라 함은 임금과 신하를 가리키는 낱말이었던 것이었다.

"하오나 상대등 나으리."

품여는 몸을 떨면서 말하였다.

"정월 초하루에 일식이 있어 태양이 사라지고 어둠이 하늘을 가렸나이다. 이는 하늘에서 태양이 사라졌음을 뜻하며, 또한 패성이 동쪽에 나타남으로써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대왕마마께오서 붕어하심을 뜻하며 이는 하늘에서 가장 밝은 해는 사라질 것임을 나타내고 있나이다. 하오면 상대등 나으리, 해가 사라진 하늘에서 그다음 가장 밝은 것이 무엇이겠나이까."

"그것은"

김균정이 대답하였다.

"마땅히 달(月)이 아닐 것이냐."

김균정이 대답하자 품여가 말을 받았다.

"그렇사옵나이다. 상대등 나으리. 하늘에서 가장 밝은 해가 사라졌다면 마땅히 다음으로 달이 가장 밝을 것이나이다. 하오면 달은 자고로 대왕마마의 후비(后妃)를 가리키고 있사옵는데, 잘 아시다시피 대왕마마께오서는 왕비를 맞아들이지 않으시어 후비도 후사도 없으시나이다. 따라서 하늘의 태양인 천자(天子)가 사라진 다음에는 가장 밝은 것은 당연히 월경이 아니겠습니까."

월경(月卿).

일관 품여가 가리키고 있는 월경은 삼위(三位) 이상의 공경(公卿)을 이르는 말로 가장 벼슬이 높은 신하를 의미하는 단어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자연 상대등인 김균정을 가리키고 있음이 아닐 것인가.

상대등은 상신(上臣)이라 불리던 최고의 관직이었으며, 또한 왕위의 정당한 계승자가 없을 때에는 자동적으로 그 후계자로 추대되는 제일의 실권자였던 것이었다.

만약 품여의 점성대로 대왕마마가 붕어하실 때에는 자연적으로 월경인 상대등 김균정이 왕위에 오르는 일은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세 번째로 밝은 별인 태백성이 달을 침범한다는 것이 품여의 천문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그대는 태백성이 달을 범하고 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렇사옵나이다."

품여는 여전히 몸을 떨며 대답하였다.

"해가 사라진 하늘에 마땅히 달이 빛나고 있어야 하온데, 태백성이 다시 달을 가리어 어둠이 천하를 가리고 있나이다. 이는 반드시 대내에서 무서운 변란이, 변란이…"

품여는 성술(星術)을 하다말고 차마 말을 잇지 못하였다.

"어서 말을 하지 못하겠느냐."

김균정이 호통을 치자 품여가 간신히 말을 이었다.

"무서운 변란이 일어날 징조이나이다. 이는 하늘과 땅이 무너지고, 양과 음이 뒤바뀌고, 꼬리가 머리를 잡아먹는 불길한 징조이나이다. 상대등 나으리. 상과 하가 반드시 바뀔 것이나이다."

품여가 말하였던 '태백성이 달을 범하였다'는 천체현상은 이처럼 상과 하가 뒤바뀌는 변란을 가리키고 있었던 것이다. 계급이나 신분이 아래인 사람이 부당한 방법으로 윗사람을 꺾어 누르거나 죽이는 변란. 이는 하극상(下剋上)을 의미하는 천기였던 것이었다.

그렇다. 이는 품여의 말처럼 천기의 누설이었던 것이었다.

글=최인호

그림=이우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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