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아첨' 하는 사진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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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사람을 찍을 때, 찍히는 이에게 '아첨'하든가 아니면 그이를 '희생자'로 만들거나 하는 수가 가장 많다.

'실물보다 좋게'나오도록 하는 것은 '아첨'이고 찍히는 사람의 인격이나 존엄성 같은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찍는 것은 '희생'시키는 것이다.

보기보다 잘 나오면 사진발이 좋다고 하고 그 반대면 찍은 이가 서툴러서 그렇다고 한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자면 생긴 그대로 나온다. 아무리 아첨하려 해도 안되는 경우를 여러번 겪은 나로서는 그리 말할 수밖에 없다

*** 실물보다 좋게 찍는 기술

사진의 생명은 무엇보다 빠른 사실적인 재현에 있다. 따라서 보다 빨리 보다 사실적인 질감을 얻기 위해 카메라와 필름 같은 것들이 발달해 왔다.

필름에서만 들먹이자면, 필름이 클수록 해상력을 극명하게 나타낸다. 필름 위의 영상은 입자(디지털 사진의 화소에 해당)로 구성돼 있으므로 사진을 확대하는 것은 그 입자를 크게 키우는 것이다.입자들이 커지면서 입자와 입자 사이가 성글어지면 사진은 초점이 덜 선명하게 된다.

대형 카메라에 쓰이는 8×10인치(20.3×25.4㎝) 필름은 가장 흔히 쓰이는 35㎜ 필름보다 약 60배쯤 크다.8×10인치 크기의 사진을 만들 때, 35㎜ 필름에서는 입자가 60배로 커지나 8×10 필름에서는 필름 크기 그대로 이므로 커질 리가 없다. 따라서 8×10 필름은 60배쯤 더 극명하다.

그러나 큰 필름을 쓰자면 큰 카메라라야 된다. 큰 것은 무겁고 거추장스러우며 조절장치가 둔한 데다 큰 삼각대를 써야 하므로 기동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큰 카메라로는 포토리얼리즘(물질감을 극명하게 나타내는 사실성)은 이룰 수 있으나 생동감 있는 리얼리티는 포착하기 어렵다.

내면으로 들어가기 위해 표면 묘사를 하는 것이지만,큰 것에 찍혀서 굳은 사람의, 눈으로 볼 때보다 훨씬 더 질감이 극명한 사진에서는 오히려 표면에 그 사람의 인품은 밀려나고 마는 수가 많다.

재현된 극단적인 물질감은 마치 손재주만 끔찍하게 좋은 화가의 그림처럼, 마음 다친 날 문득 쳐다보는 빛 부신 하늘처럼 어이없게 한다.

반면에 작은 것으로 급히 우발적으로 포착한 탓에 초점이 좀 덜 맞고 흔들려서 디테일이 희생된 사진으로부터 생생한 느낌을 받는 수가 있다. 과학이 이룬 극단적인 포토리얼리즘은 마침내 리얼리티를 배반한다. 메커니즘의 발달은 이처럼 이율배반적이기도 하다.

그런 것이 또 있다. 아날로그 사진에서는 몽타주 한다든가 하는 조작은 쉽지가 않았으며 주의 깊게 살피면 그런 것은 쉽게 들통이 났다.

그런데 디지털로 조작한 것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보다 신속 정확한 '스트레이트'같은 디지털 속성과는 다른 수상한 방향으로 나가는 사진이 흔하다.

사진관 사진이 말하자면 '아첨'하는 사진들이었다. 거기서는 살결의 질감 같은 것을 곱게 하려고 대개 큰 카메라를 사용한다.

따라서 검은 피부나 흉터.여드름자국 같은 것도 극명하게 나온다. 잘 나오게 해놓고서 그런 것을 아날로그 시대답게'귀신 같은 솜씨'가 연필로 그려서 어느 정도까지는 수정을 했었다. 그것 잘하는 사진관이 잘 찍는 곳이었다.

*** 기념.증명사진 윤색 쉬워

그런데 요즘은 사진관뿐만 아니라 기념사진 찍은 것도 컴퓨터로 수정을 한다. 아니 아예 윤색을 한다. 증명사진 같은 사진의 기능이 말하자면 사진의 본령이다.

증명사진을 보고 그 사람을 알아볼 수 없다면 그건 사진이나 사람 둘 중 하나가 가짜임이 분명하다. 면접시험 때 실물보다 잘 생겨서 의심쩍은 '뽀시시한' 증명사진을 보고 면접관이 몇 번이나 확인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본질은 흐려진다. 과도기라서? 과도기 아닌 시기도 있다면 그런 때에 한번 살아보고 싶다.

姜運求 <사진가>

▶필자약력=사진가. 경북대 영문과 졸업. 개인전 세번, 단체전 다수. 사진집 '우연 또는 필연'(열화당), '모든 앙금'(학고재), '마을'3부작(열화당) 등. 공저로 '사진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까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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