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방송 본방송 개국 또 연기] 중심 못잡는 방송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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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최근 방송위원회를 뿌리째 뒤흔든 것은 위성방송과 지역 방송사들간의 갈등이었다.

한국디지털위성방송이 지상파 TV프로그램의 재송신을 추진하자 지역 방송사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문제가 커지는 가운데 방송위 산하 방송정책기획위는 지난해 11월 종합보고서에서 이에 관한 입장을 밝혔다.

학계와 지상파.케이블.위성방송 전문가 13명으로 구성된 방송정책기획위는 '위성방송의 지상파 프로그램 재송신을 일정 기간 금지해야 한다'는 내용을 다수 의견으로 채택했다.

방송위는 그러나 며칠 뒤 '위성방송의 지상파 재송신을 막을 법적 근거가 없다'며 사실상 재송신을 허용했다. 이같은 결정에는 위성방송에 참여한 지상파 방송사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방송위가 한 해에 수억원을 들여가며 학계에서 정책적인 조언을 받고 있지만 정책으로 연결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 신방과 교수는 "보고서에 책임 있는 말을 쓰지 않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래서 방송위가 스스로 전문성과 독립성을 높이지 않는 한 책임 있는 정책을 펴기 어렵다는 지적이 학계.방송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황근(黃懃) 선문대 신방과 교수는 "방송내용의 심의를 위주로 했던 예전에는 방송위원이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면 됐다. 그러나 지금은 방송위가 복잡한 이해관계자들의 중재 역할을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여야가 방송위의 역량을 높이는 데 초점을 두지 않고 방송위원의 정당 안배에만 신경쓴 결과 방송위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그는 "방송위원 아홉명 중 변호사가 한명도 없다는 것은 문제다. 방송 기술을 아는 전문가도 없어 방송위가 절름발이 운영이 됐다"고 했다.

미국연방커뮤니케이션위원회(FCC)의 경우 다섯명의 위원 중 네명이 변호사다.

방송위의 전문성을 위해 선진 외국처럼 위원회 밑에 전문인력이 있는 연구소 등 연구조직을 두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무엇보다 방송위의 독립성을 위해 방송위원장만이라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가 많다.

방송위 관계자는 "사안에 따라선 비공개할 수 있는 방송위의 회의 내용을 공개할 경우 방송위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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