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발언 투어' 파리에서 마무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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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북한 핵 문제 해법에 대한 발언의 강도와 구체성을 연일 높여가고 있다.

지난달 12일부터 LA.남미, 라오스의 '아세안+3(한.중.일)'정상회의와 유럽 3개국을 22일간 순방해 온 노 대통령은 순방지에서 어김없이 핵 문제를 거론했다. 주무대는 동포 간담회였다. 사전에 계산한 듯 시간 순으로 발언의 수위를 높여나가고 있다. "대북 무력 사용, 봉쇄, 붕괴는 안 돼"(11월 12일 LA) →"누구든 한국민 뜻 벗어나는 해법 강행 못해"(1일 런던)→"북한 붕괴 가능성 거의 없다"(5일 바르샤바)는 식이다.

노 대통령의 발언 시리즈는 6일 정점을 기록했다. "북한의 레짐 체인지(정권 교체)를 원하는 나라, 사람들과 손발이 안 맞게 돼있다"고 한 것이다. 또 "손발이 안 맞으면 얼굴을 붉힐 수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차곡차곡 북핵 해법의 모자이크를 짜맞춰 보이는 행보를 계속해 온 노 대통령이 협상 준비 단계에 관한 한 자신의 의중을 거의 100%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노무현식 평화적 북핵 해법'의 1차 결정판인 셈이다.

프랑스 발언은 가장 구체적이다. 노 대통령은 "북한의 붕괴를 원치 않는 나라"로 '중국과 한국'을 명시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일부 서구 국가에서 북한의 체제가 결국 무너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더 불안해 하고 위기감을 느끼는 것"이라면서 이렇게 지적했다. "그러면 북핵 문제가 안 풀린다"고도 했다.

이어 노 대통령은 "손발을 맞추려면 한국이 가장 강한 발언권을 행사해야 한다"며 "(북핵은) 우리의 생존 문제라서 이를 위해 혹 누구랑 얼굴을 붉혀야 한다면 얼굴을 붉히지 않을 수 없다"고까지 했다. 지금까지 나왔던 발언 중 최강수다. 동시에 북한에 대해서는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끝내 핵무기를 개발하는 상황이 진행되면 누구도 일을 장담할 수 없다"며 "정치적 결단을 반드시 내려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핵무기를 개발하고도 경제 지원을 받으리라 생각할 정도로 북한이 어리석은 사람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직설도 구사했다.

이날 발언이 '한.중' 대 '미국 등 서구 국가'간의 편 가르기로 비칠 것을 우려한 듯 김종민 청와대 대변인은 부연 설명에 나섰다. "노 대통령에게 확인해 본 결과 '지금까지 해 오던 얘기'라며 '일부 국가라는 표현은 그 나라의 정부를 얘기하는 게 아니고 그 국가 내부의 일부 사람, 목소리가 있다는 취지의 얘기'라고 말했다"는 설명이다.

◆ 시리즈 발언 로드맵 있나=노 대통령의 발언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차장 이종석)가 마련한 미 대선 이후의 단계별 북핵 해법 로드맵에 따라 행해지고 있다는 전언도 있다. 청와대의 한 핵심 관계자는 "시기적으론 미 대선 이후, 무대로는 LA 방문에서부터 우리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겠다는 내부 방침이 서 있었다"며 "미 대선 이후 행정부 진용 마무리까지의 과도기에 6자회담 조기 재개와 실질적 진전의 유리한 분위기를 조기에 조성하려는 게 현 국면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연장선상에 미국 내 강경파의 목소리가 커질 여지를 조기에 차단하겠다는 뜻도 담겼다고 한다. 북측에는 핵 폐기의 불가피성을 단호하게 설득하며 체제 붕괴 우려에 대한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니 믿고 협상 테이블로 나오라는 유화적 메시지를 담은 것으로 분석된다.

파리=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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