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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예산 아낀다고 큰일나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중앙일보가 18일자 1면에 '지난해 정부 사업에서 남은 돈 1조원을 다른 사업 예산을 늘리는 데 썼다'고 보도한 뒤 기획예산처 관계자들이 크게 두 가지로 해명을 해왔다.

'총사업비가 늘어났다고 해서 바로 당해연도에 예산을 집행하는 것은 아니다' '총사업비 증감 요인은 매년 예산 편성에 반영하고, 이 예산은 국회 의결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해명은 설득력이 약하다.

우선 총사업비 증가는 결국 예산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10개 부처가 늘려 놓은 총사업비 1조1천억원은 당장 집행되지 않더라도 향후 몇년에 걸쳐 결국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와야 하는 돈이다.

게다가 기획예산처는 총사업비 증감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은 채 얼버무리려 했다. 기획예산처는 지난해 7월 26일 '2001년 총사업비 조정내역'에서 "각 부처들의 증액 요구에도 불구하고 총사업비를 5백60억원 줄였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저가낙찰 등으로 인해 자연히 줄어든 총사업비(지난해 1조1천7백억원)는 언급하지 않았다. 기획예산처가 노력해 총사업비를 5백60억원 깎은 것처럼 주장하면서 1조원 이상 국민의 부담을 줄일 수 있었던 부분은 감췄다.

예산을 담당하는 부처의 기본 소명은 '국민 부담 최소화'다. 이 점에서 볼 때 아랫돌을 빼 윗돌을 쌓는 식은 곤란하다.

총사업비 변동 요인에 대해 매년 예산편성 때 국회 의결을 받는다고 주장한 대목도 그렇다.

그동안 기획예산처가 저가낙찰 등의 자연감소분으로 인해 총사업비를 줄이겠다고 국회에 삭감을 보고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뿐만 아니라 정부는 매년 예산편성 때 삭감당한 사업에 대해 총사업비를 변경한 적도 없다. 예산집행을 줄어든 만큼 연기했을 뿐이다. 이같은 지적에 기획예산처 고위 관계자는 "자연감소한 총사업비는 다음해 예산심의 때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이 약속이 지켜질지 다음해 예산심의를 기다려보는 수밖에 없다.

이수호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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