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 경제] 강남 아파트 값 올랐다고 세무조사 하는 이유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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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틴틴 여러분, 의식주(衣食住)란 말 들어봤죠. 사람이 살아가는 데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세 가지로 옷, 먹거리, 집을 말합니다.

이 중 옷과 먹거리는 필요할 때마다 살 수 있어요. 하지만 집은 옷이나 먹거리와 달리 값이 비싸기 때문에 마음대로 장만하는 게 쉽지 않아요.

집이 필요없는 사람은 없을테니 모든 사람이 집 한 채씩 갖고 있는 게 가장 좋겠죠. 그러나 우리나라 주택 수는 전체 가구의 96.2%(2000년 말 기준)랍니다. 가구 수는 1천인데, 집은 9백62채 밖에 없어 나머지 가구는 다른 집에 세들어 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을 주택보급률이라고 하죠.

그나마 서울의 주택보급률은 77.4%에 불과합니다. 서울에서는 22.6%의 가구가 다른 집에 얹혀 살고 있는 것이죠.

1990년에는 주택보급률이 전국 72.4%, 서울 57.9%였답니다. 지난 10여 년간 집을 많이 지어 주택보급률이 크게 올라간 것입니다.

집 값도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사고자 하는 수요와 팔고자 하는 공급이 맞아떨어지는 수준에서 결정됩니다. 그런데 주택보급률이 1백%를 밑돌다보니 수요가 공급보다 많아져 집 값이 거의 항상 오르고 있답니다.

주택보급률이 1백%를 넘더라도 어느 지역에 집이 많이 있느냐가 중요하겠죠. 전국적으로는 집이 부족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많은 사람이 살고 싶어하는 좋은 동네에 집이 적으면 그 동네의 집값이 많이 오를테니까요.

미국.일본 같은 나라의 주택보급률은 1백%를 넘지만 뉴욕.도쿄 같은 대도시의 집값이 비싼 것은 이 지역에 살고자 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기 때문입니다. 서울의 집 값이 지방보다 비싼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죠.

80년대 후반 우리나라에 부동산 투기 열풍이 불었답니다. 당시 경기가 좋아지면서 소득이 늘어나자 보다 큰 집, 좋은 집으로 이사가거나 새 집을 마련하려는 사람이 부쩍 늘어났는데, 집은 적었기 때문이죠. 일부 아파트 값은 한 해에 배로 오르기도 했답니다.

집값이 갑자기 껑충 뛰면 많은 사람이 힘들어지겠죠. 많은 돈을 가진 사람이나 집을 여러 채 가진 사람은 돈을 벌겠지만 대부분은 새로 집을 마련하거나 조금 넓은 집으로 이사가기가 어려워집니다. 또 집값이 오르면 전셋값도 함께 올라 전세 사는 사람들의 부담이 커집니다.

게다가 집 값이나 전셋값이 많이 오르면 봉급생활자들이 살기가 어려워져 돼 월급을 더 올려달라고 요구하게 됩니다. 이렇게 임금이 올라가면 기업들이 그만큼 물건값을 올려야 해 물가가 오르게 되고 해외 시장에 물건을 수출하기도 힘들어집니다.

집값이 많이 오르면 이처럼 경제 전체에 주름살을 가져오므로 정부는 집값이 갑자기 오르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답니다. 집값이 오르는 것을 막으려면 집을 많이 지어야 합니다.

그래서 집값이 뛰면 정부는 주택 공급물량을 늘리게 됩니다. 80년대 후반 집값이 급등할 때 발표된 게 분당.일산.평촌.중동 등 4개 신도시 건설계획이었죠.

그러나 집이란 게 며칠 만에 지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외국에서 수입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집을 지어 가격을 안정시키는 정책이 효과를 보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 때 자주 등장하는 게 국세청의 세무조사입니다. 그러면 대체 국세청의 세무조사와 집값이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집값은 실제 들어가 살 집을 사겠다는 사람보다는 집을 사고 팔아 돈을 벌겠다는 사람 때문에 오르는 경우가 많아요. 이것을 투기적 가수요라고 하고 이런 식으로 돈을 벌겠다는 사람을 흔히 부동산 투기꾼이라고 하죠.

가수요가 많아지면 집값이 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앞다퉈 집을 사겠다고 나서면서 값이 더 오르는 악순환이 빚어집니다.

국세청이 나서는 것은 이같은 가수요를 잠재우자는 취지에섭니다. 투기꾼들을 세무조사해 세금을 많이 물리면 가수요가 줄어들고 집값이 안정된다는 것이죠.

투기를 부추기는 부동산 중개업소도 세무조사 대상입니다. 이들은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하겠다고 나서면 움츠러들곤 하죠.

80년대 후반에 국세청은 부동산 투기자들의 명단까지 무더기로 공개했어요.

신도시 개발과 국세청의 투기 조사 덕분에 90년대 이후 일부 지역을 제외하곤 부동산 투기가 잠잠해졌습니다. 외환위기 직후엔 경기가 나빠 집값이 오히려 떨어지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지난해부터 다시 서울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아파트값이 많이 올라 문제가 되고 있답니다.

그래서 정부는 지난 8일 부동산 안정대책을 내놓았죠. 내용은 전과 마찬가지로 주택 공급을 늘리면서 투기자에 대한 세무조사를 하겠다는 것이죠.

이번에는 서울 인근 11곳의 그린벨트에 아파트 10만 채를 짓겠다고 했습니다. 그린벨트란 녹지 공간을 보존하기 위해 개발을 제한한 곳인데, 여기에 아파트를 지어 강남으로 몰리는 사람을 이 쪽으로 유인해 보자는 것이지요.

예나 다름없이 국세청 세무조사는 가수요를 막기 위한 조치입니다. 아파트 분양권을 팔거나 재건축 소문이 나돈 아파트를 산 지 1년 이내에 팔아서 많은 이익을 남긴 사람들에게 세금을 물리겠다고 합니다. 부동산 중개업소, 특히 아파트 분양현장을 돌아다니며 복덕방 역할을 하는 이른바 '떴다방'에 대한 조사도 하겠답니다.

또 강남지역에 값이 많이 오른 아파트들의 기준시가를 수시로 조정해 세금을 더 물리는 방안도 포함돼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새로운 대책도 있어요.

서울 강남지역의 오래된 아파트들이 재건축에 나서면서 집값이 오른 측면도 있거든요. 또 유명 학원이 강남 지역에 몰려 있어 강남으로 옮기려는 학부모들이 많은 점도 집값 상승의 한 원인이랍니다.

때문에 강남지역 재건축 일정을 조정하고, 유명 학원을 분산시키는 대책도 추진 중입니다.

특히 국세청은 유명 학원들이 강남지역 아닌 다른 곳으로 분산될 수 있도록 학원에 대한 세무조사까지 하겠다고 했습니다. 학원대책에도 국세청이 동원되는 셈이죠.

이런 대책들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는 아직 모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정부가 집값 대책을 미리미리 세우지 못하고 걸핏하면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동원한다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이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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