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깊이보기] SBS 다큐멘터리 '잘 먹고 잘 사는 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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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건강에 관한 한 한국인 만큼 민감한 민족도 없어 보인다. 특히 TV라는 대중 매체를 통해 쏟아지는 각종 건강 정보는 그 진위(眞僞)에 상관없이 위력적이다. 지난해 '비타민이 만병 통치약'이라는 한 의사의 말이 전국적인 비타민 사재기 열풍으로 이어졌던 게 좋은 예다.

SBS가 지난 11~13일 3부작으로 연속 방송한 다큐멘터리 '잘 먹고 잘 사는 법'은 기존의 건강 상식에 큰 충격을 던졌다. 제작진은 "육식이 몸에 해로울 수 있다" "우유는 뼈의 성장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다소 민감한 사안을 전면적으로 다루면서 그 대안으로 채식을 내세웠다.

우선 1년여에 걸쳐 치밀하게 제작된 이 프로그램은 채식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12~13일 방송분은 타방송사의 인기 오락프로를 제치고 18%대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첫 방송이 나간 후 곧바로 유기농 채소에 대한 수요를 불러일으키면서 육류 수요를 줄이는 등 가정의 식단에 변화를 초래할 정도였다고 한다.

'잘 먹고…'는 과학적인 실험과 실례를 통해 시청자들의 공감대를 형성해가는 방식이 돋보였다. 우선 햄버거.스테이크 등 서양식에 길들여진 한 초등학생의 혈중 콜레스테롤이 일반인의 두배에 달한다는 점에 착안, 6개월간 채식으로 전환한 후 콜레스테롤이 일반인 수준으로 떨어졌음을 증명해 보였다.

또 집안 대대로 당뇨를 앓아온 프로야구 LG의 심성보 선수가 채식으로 질병을 치료하고, 피부성 질환인 아토피 환자 3명이 자연 음식으로 완치되는 과정도 추적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적인 실험 사례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는 짜임새가 부족했던 것 같다. 몇개의 이슈를 집중적으로 좇다보니 그 유기적 연관관계에 소홀했다는 의미다. 특히 시작부터 육식 문화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만을 던지는 바람에 보는 이로 하여금 '고기는 악(惡), 채소는 선(善)'이라는 결론에 도달케 한 것은 아닐지. 가축의 대량사육 환경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것은 뜬금없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그램은 한국인의 음식문화를 되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 모유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일깨운 것도 빠뜨릴 수 없는 대목이다. 하지만 정작 잘 먹고 잘 사는 법은 개개인의 선택 사안일지 모른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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