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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부의 블랙홀' 강남이 뭐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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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서울 강남에는 특별한 교통체증이 있다. 승용차로 아이들 학원 바래다주기 체증과 백화점 쇼핑 행렬이다. 학원 강의가 시작하고 끝나는 시간에 대치동 은마아파트 주변을 한바퀴 도는데 30여분 걸린다. 주말과 공휴일이면 압구정동과 대치동.반포 일대 백화점 주변도로는 주차장을 방불케 한다.

건설회사 L부장(43)은 지난해 말 대치동 M아파트로 이사했다. 올해 중3인 아들과 초등학교 6학년인 딸의 교육을 위한 중대 결심이었다. 경기도 고양시 화정지구 아파트를 팔고 전세를 얻는데도 돈이 모자라 부모에게 손을 벌렸다.

지난 12일 현재 강남구 아파트의 평균 거래가격은 평당 1천3백49만원. 성급한 사람들은 평당 2천만원 시대를 내다본다. 25개구 가운데 가장 낮은 금천구(4백83만원)의 2.8배다.

서울에는 인천시.경기도 등에서 하루 평균 1백9만명이 들어오는데, 특히 강남구행 통근.통학인구가 45만6천명으로 가장 많다.

수도권과 지방의 차이 못지않게 같은 서울 하늘 아래서도 강남(강남.서초구)과 비(非)강남지역의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그 결과 사람과 돈을 따라 교육.교통.문화.산업활동 등이 강남으로 빨려들어가는 '강남 블랙홀 현상'이 심각하다.

주민의 학력과 고급차 소유도 강남이 저만큼 앞서간다. 새 제품은 강남에서 명함을 내밀어야 히트상품 대열에 오를 수 있다. 백화점 고객 1인당 평균 구매액도 강남이 강북의 1.5배다.

강남구의 올해 예산은 2천9백억원으로 충북 충주시와 맞먹는다. 경기도 의왕시.동두천시.연천군 세곳을 합친 규모다. 강남.서초구 관내 5개 세무서에서 2000년에 거둔 소득세는 2조3백69억원으로 나라 전체 소득세의 11.6%에 이른다. 기업체의 본사와 서비스업체가 강남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정보기술(IT) 기업도 30%가 강남.서초구에 몰려 있다.

이같은 특정지역 독주 현상은 선진국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일본 도쿄(東京)와 미국 뉴욕 맨해튼도 그렇다. 따라서 현실을 인정하면서 강남 블랙홀 현상을 완화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남궁근(행정학)서울산업대 교수는 "무조건 강남행을 막을 수는 없다"며 "다른 지역에 투자를 늘려 강남에 비해 처지지 않는 교육.주거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인진(사회학)고려대 교수는 "강남으로 가려는 사람들이 집이 없어서가 아니다"며 "지방과 수도권에 명문고를 부활시키고 문화시설에 대한 투자를 강북지역에 우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특별취재팀

한천수 사회전문기자(팀장)

양재찬 경제전문기자

신혜경 전문위원

손용태·양영유·김선하 기자

사진=김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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