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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홍구 칼럼

단호하게, 그러나 슬기롭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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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멀고 험한 어두운 밤길을 가다 보면 두 개의 서로 다른 등이 필요하게 된다. 하나는 바로 발밑의 돌부리에 걸리지 않도록 비춰주는 손전등이요, 다른 하나는 먼 곳까지 비춰줄 수 있는 탐조등으로 올바르게 목적지의 방향을 알려주는 것이다. 당장은 넘어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더라도 목적지로 향한 궤도를 이탈해 방황하게 된다면 더 큰 위험에 빠지게 될 것이다. 천안함 사태로 격분한 민심의 물결 속에서 진행된 침착한 조사과정이나 그 결과를 토대로 대통령과 관계 장관들이 제시한 일련의 대처방안은 마치 우리 발밑을 비춰주는 손전등의 역할로 국가안보의 어려운 고비를 넘기는 첫 단계에서 유효하게 작용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결과 분단의 벽을 넘어 통일로 전진하기 위한 올바른 방향을 밝혀줄 탐조등이다.

멀리 본다는 것은 곧 역사의 흐름을 인지한다는 것이다. 올해로 60주년을 맞은 6·25전쟁, 휴전 속에 대결이 지속되고 있는 그 전쟁의 역사 속에서 이번 천안함 사태도 일어난 것이다. 그렇다면 왜 북한은 이 시점에서 천안함 폭침이란 도발을 감행했을까. 그것은 북한이 지난 60년에 걸친 체제경쟁과 대결에서 실패하며 깊은 수렁에 빠져드는 위기의식에 짓눌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남북대결은 군비경쟁보다도 세계사적 변화에 대한 적응도의 우열로 가려지며 역사의 흐름을 외면한 북한은 그에 상응하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결국 역사에 역행하는 체제는 구시대적 군국주의 왕조체제나 스탈린식 전체주의를 모방해 21세기에서 연명하려던 생존전략을 넘어 핵무기란 강수로도 구원될 수 없게 된 것이다.

또한 북한은 어쩔 수 없는 시한에 쫓기고 있다. 첫째는 지도자의 건강상태이며 왕조적 계승의 불확실성이다. 둘째는 불과 2년 후인 2012년을 이른바 ‘강성대국’ 완성의 해로 못 박는 자충수를 두어버린 것이다. 완만한 속도로라도 개방과 개혁을 통해 역사의 흐름에 합류하는 대안을 원천적으로 거부하고 곧바로 자멸이냐 아니면 적화통일이냐 양자택일의 길로 들어선 북한의 자세는 모험주의의 극치이며 그만큼 벼랑 끝에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북한의 모험주의적 도발의 선상에서 일어난 천안함 피격 사건을 크게 문제 삼지 않으려는 중국의 태도에 대해 많은 한국인이 의아해하고 있다. 한반도의 평화와 대결구도의 극복 과정에서는 중국의 긍정적 역할이 불가결의 요소임을 잘 알고 있는 한국인으로서는 답답한 심정이 아닐 수 없다. 그러기에 이번 사태를 겪으며 지정학적으로, 역사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아시아의 중원에 위치하며 정치, 군사, 경제 등 모든 면에서 아시아 최대 강국의 자리를 되찾은 중국에 가장 가깝고 우호적인 이웃이 되기를 바라는 한국인의 바람은 피할 수 없는 걱정과 뒤섞이게 되었다. 그렇지만 냉전의 와중에서 미국과의 수교와 소련과의 대치를 과감히 선택한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 그리고 개방과 시장경제를 통한 국가발전을 추진한 덩샤오핑처럼 역사를 꿰뚫어보는 리더십의 전통을 가진 중국이 한반도를 세계사의 예외지대로 방치하는 데 동조하지는 않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천안함 사태에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광범위한 국민적 합의가 형성되고 있다. 그러나 먼 역사의 흐름을 내다보며 당면문제를 어떻게 풀어가는 것이 슬기로울지 찾아보는 것은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다. 이미 우리는 역사의 흐름을 타고 순항해 왔기에 조급하거나 섣부른 대응으로 맞서지 않아도 능히 버틸 수 있는 여유를 갖고 있다. 갈 길을 멀리 보면서 국제사회와의 유대 및 공감대를 지속적으로 넓혀가기 위해 가일층 노력해야 한다. 역사의 흐름을 타고 역사가 만들어주는 행운의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는 슬기로운 민족임을 보여줄 수 있는 시험이 가까이 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통일의 그날이 멀지 않을 수도 있다.

이홍구 전 총리·본사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