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제임스 딘과 욘사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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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10년 전 제임스 딘 유족이 제임스 딘의 이름과 초상을 허락 없이 사용했다는 이유로 우리나라 의류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사건이 있었다. 분쟁협상 과정에 필자는 제임스 딘의 생가가 있는 도시인 페어몬트를 방문했는데, 인구 4000명이 채 되지 않은 이 도시에는 놀랍게도 제임스 딘 박물관이 3개나 있었다. 영화배우로 고작 2~3년간 활동하면서 '자이언트''에덴의 동쪽' '이유 없는 반항' 등 3편의 영화만을 남기고 25세에 요절한 그에게, 무슨 유물이 그리 많기에 박물관이 3개씩이나 있단 말인가? 필자는 궁금증을 풀기 위해 그 중 한곳에 들어가 보았다.

제임스 딘이 사용했던 만년필.노트 등이 무슨 고려자기나 되는 양 유리관 안에 진열되어 있었다. 그런데 필자의 시선이 멈춰선 곳은 유품이 아니라 어떤 할머니였다. 칠십은 족히 되어 보이는 할머니는 제임스 딘이 썼다는 머그잔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아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고 있었다. 제임스 딘이 열 살 때 캘리포니아에서 생모가 죽자 아버지는 생모의 시신이 들어있는 관과 함께 제임스 딘을 기차 화물칸에 태워 고향으로 보냈다고 한다. 어린 제임스 딘은 관 속에서 생모의 머리털을 잘라 그것을 베개 속에 넣고 살았으며, 제임스 딘의 반항적인 기질은 그때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설명 등…. 머그잔 앞에서 반나절씩 보내기로 치면, 일주일도 모자라는 관광코스임이 분명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얼마 전 욘사마 배용준이 나리타 공항에 내려 도쿄 시내로 들어가는 장면은 헬기 촬영을 통해 일본 TV 정규방송 중에 생중계되었다고 한다. 뉴욕 양키스의 4번 타자 마쓰이의 귀국 소식이 욘사마에 가려 상대적으로 작게 다루어졌다고 하니, 일본 내 욘사마 열풍에 관해서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것 같다.

올해도 스키 시즌 시작과 함께 많은 한류 관광객들이 욘사마를 스타덤으로 올려놓은 겨울연가의 촬영지인 용평스키장을 방문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 조사에 의하면, 한류 관광객이 순수하게 우리나라에서 쓰는 돈이 1인당 5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 돈으로 15만원이나 되는 욘사마 사진집이 발매되기도 전에 10만부가 예매완료되었다는 바다 건너편 소식과 비교할 때, 놀랍다 못해 씁쓸하기까지 한다.

물론, 최근 들어 정부도 한국관광공사를 필두로 하여 한류열풍을 산업으로 연결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수백만명의 관객을 끌어 모은 영화 실미도의 촬영세트장이 팬들에게 알려져 관광지로 개발될 조짐을 보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산림훼손 등 무허가 건축물임이 밝혀져 해당 지방자치단체가 부랴부랴 이를 철거해 버렸다는 뉴스는 우리를 맥빠지게 한다. 미국에는 주별로 자기네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나라나 다른 주를 의식하지 않고 만든 특별법이 더러 있다. 제임스 딘의 인디애나주와 엘비스 프레슬리의 테네시주는 유명배우나 가수의 초상 또는 성명을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권리, 이른바 퍼블리시티라고 하는 권리를 매우 두텁게 보호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인디애나주의 경우 그 권리를 사후 100년간이나 보호해주고 있어, 미국 내에서조차 좀 심한 것이 아닌가 하는 논란이 있을 정도다.

정부는 각종 과도한 규제를 풀어 기업과 경제를 살리겠다는 공약을 수없이 되풀이해왔다. 그러나 무허가 건축물이라는 이유로 이미 관광장소가 돼버린 영화세트장을 헐어버리는 경직성을 갖고는 문화의 산업화가 활발하게 추진될 수 없다. 자기가 만든 것도 아닌데 자기 것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은 더욱 그럴싸하게 포장하여 전설로 만드는 일본과 미국의 예는 욘사마와 한류열풍을 해프닝(Happening)이 아닌 전설(Legend)로 만들기 위한 민간과 정부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 보여준다.

남형두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저작권 심의 조정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