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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기획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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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지금은 재정경제부로 통합된 옛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는 스타일이 전혀 달랐다. 경제기획원은 자유분방한 스타일이었지만, 모피아(재무부 관료의 별칭)는 딱딱한 보수적 관료의 대표 격이었다. 경제기획원 간부는 사무실에서 일할 때 문을 열어놓지만, 재무부 간부는 일할 때는 문을 닫아놓고 부재(不在)시에 문을 열어놓았다는 얘기는 두 부처 스타일의 차이를 잘 보여준다.

두 부처는 항상 앙숙이었다. 재무부는 금융.세제.국고 등 실질적인 경제정책수단을 장악한 막강 부처였다. 경제기획원만이 경제정책 총괄기능과 예산권을 무기로 재무부를 견제할 수 있었다. 상공부(현 산업자원부) 등 다른 부처는 경제기획원의 지원을 받아 겨우 재무부와 논의를 벌이는 식이었다.

10년 전인 1994년 12월 3일 김영삼 정부는 전격적으로 정부조직 개편안을 발표했다.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는 명목이었다. 눈길을 끈 것은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를 통합해 재정경제원(현 재정경제부)을 만든다는 대목. 1961년 7월 5.16 쿠데타 정권에 의해 만들어져 경제성장을 이끌어온 경제기획원의 간판은 이렇게 내려졌다.

두 부처가 합쳐진 재경원은 말 그대로 공룡부서였다. 대한민국의 경제정책수단이 모두 재경원에 몰렸다. 경제부처 내에서 견제와 균형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재경원의 내부 결재가 곧 정책의 결정이었다.

재경원의 출범으로 한국 경제를 차분하게 들여다보는 곳이 사라진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하는 사람이 많았다. 당시 재경원 경제정책국장은 부총리에게 보고할 시간을 얻어낼 수 없다고 푸념하곤 했다. 매일 매일 닥쳐오는 긴급한(?) 현안 때문에 구조적인 문제나 중장기적인 과제는 경제부총리의 관심에서 멀어졌다는 하소연이었다. 경제기획원은 사라지고 재무부만 남게 되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경제구조 변화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외환위기를 맞았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요즘 경제사령탑이 없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경제부총리 발언을 청와대 자문기구 위원장이 뒤집기 일쑤다. 뒤늦게 당.정.청 협의체를 만들겠다고 한다. 하지만 이 협의체도 정치적 이해득실만 따지며 현안 처리에 허덕일 공산이 크다. 한발 물러서 한국 경제를 내다보면서 정책을 조정하고 방향을 제시할 만한 곳은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다. 현안에 대한 정책조차 오락가락하는 판국에 경제기획원을 떠올리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세정 경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