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전 장관 "장관이라는 말 아직도 어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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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퇴임한 이창동 전 문화부 장관이 영화주간지 '씨네21'과 퇴임후 첫 인터뷰를 했다. 소설가 조선희씨와 대담 형식으로 이뤄진 이 인터뷰에서 이 전 장관은 "다른 것들을 비판하기 힘들어"지는 것을 감수하고 장관직을 맡은 데 따른 "내면의 변질"을 빼고는 장관직 수행전과 후에 심경에 큰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장관이라는 말이 아직도 어색하다. 장관을 하면 내가 앞으로 영화를 만들건, 글을 쓰건 내 말을 하는 데 상당한 장애가 될 것 같았다. 지금까지는 무슨 소리든 다 했는데 자리를 맡으면 내가 다른 것을 비판하기 힘들어지지 않겠는가. 그게 장관직을 안 맡으려고 했던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런 점에서 내 내면에 깊은 변질이 가해졌다. 그 정도이다."

이 전 장관은 "바깥에서 보기에 내 인생엔 추락이 없을지 모르지만 그냥 운이 좋아서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인생"이라며 "내 내면으로 보면 이미 예전에 추락을 해 그냥 그 상태에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또 "작가는 기본적으로 속에 분열을 갖고 있다고 본다, 영화감독도 굉장히 많은 다중인격적인 게 있다"면서 "내 속에 그런 것도 있을 테니까 장관도 내 역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느낌과 관련해 이 전 장관은 "안에 들어가 보니까 이 정부의 구성원들, 정권 중심부에 있는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성향이 많았다"고 말했다.

"권력을 싫어하는 성향. 그런데 바깥에서는 그렇게 안 보지. 자기들 눈으로 보니까. 어쨌든 권력에 대한 생각까지도 바뀐 사람들이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 사회가 변화해가는 중요한 징표가 아닐까." 그는 또 장관직을 그만 둔 뒤 외부인들의 시선이 불편해졌다고 전했다. "영화계 사람들은 괜찮다. 나를 다르게 보지 않는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나를 관찰, 비판할 준비가 돼 있는 것같다. 그 눈길이 부담스럽다. 공직을 하기 전에도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별로 신경 안 썼다. 그만큼 자유로웠던 건데 이번엔 좀 다르다. 사람들의 시선에 일상적으로 굉장히 예민하게 찔린다."

그는 재직하면서 앞으로 문화관광부가 실행해야 할 정책 방향과 일정 등을 전화번호부 두께의 책 두 권으로 정리해놓았으며, 스크린쿼터 문제에 대해서는 자신이 제시했던 3원칙(한국 영화 시장 점유율 추락시 원상 회복 조건으로 쿼터 일수 축소)이 여전히 논의할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준비중인 다음 영화의 제목은 <밀양>. "환경이 아름답지도 않고 굉장히 속물화된 소도시의 여자가 주인공이다. 그 여자는 심하게 고통받는다. 그럴 때 그의 삶을 무엇이 구원해주느냐, 하는 질문을 하는 거다. 영화가 그것을, 그 질문을 드러낼 수 있냐는 문제까지 더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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