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안국사 지산 스님, 48명 아이들의 '스님 아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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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3일 오후 2시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동 223 '통일안국사' 마당.

한 켠에 만들어진 간이 눈썰매장에서 어린이 10여명이 비닐포대를 깔고 앉아 신나게 눈썰매를 타고 있다. 50대 초반 스님 한 분이 분주히 오가며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 세워주고 내려오다 멈춘 썰매를 밀어주느라 비지땀을 쏟는다. 개구쟁이들이 눈을 뭉쳐 던지면 일부러 맞아주면서 아픈 체하는 스님의 모습이 정겹다.

이 절 주지 지산(智山.51)스님은 '버려진 아이들의 스님 아빠'로 13년째 생활하고 있다. 돌이 갓 지난 아기부터 청소년까지 모두 48명의 대식구를 혼자 힘으로 보살핀다.

스님의 하루는 오전 4시40분이면 시작된다. 일어나자마자 밤새 아픈 아이는 없는지부터 살핀다. 오전 5시부터 1시간 동안 예불을 올린 뒤에는 자정 잠자리에 들 때까지 잠시도 아이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일과가 이어진다.

갓난아이의 기저귀 갈아주기, 마구 벗어놓은 빨랫감 주워 빨기, 밥먹기 싫어하는 아이 밥 떠먹이기, 어려운 수학문제 풀어주기 등 모두가 스님의 몫이다. 때로는 이성 및 성적문제로 고민하는 중.고교생 아들.딸과 밤을 새워가며 머리를 맞대고 대화의 시간을 갖는다. 게다가 밤에 아이들이 아프기라도 하면 들쳐업고 병원으로 달려가야 한다.

2백여명의 후원자가 매달 후원금을 보내주지만 워낙 식구가 많다 보니 늘 형편이 빠듯하다. 그래서 그는 틈나는대로 인근 사찰을 돌며 쌀 등을 탁발해 온다. 또 가까운 고교에서 점심 급식 후 남는 음식을 가져다 먹인다. 제과점에서 팔다 남은 빵과 과자도 수시로 얻어온다.

스님의 버려진 아이 돌보기는 1990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같은 마을에 살던 부모가 이혼하는 바람에 오갈 데가 없어진 돌 무렵 여자아이를 맡아 기르기 시작한 것이 계기였다. 지금 초등학교 5학년으로 자란 아이는 스님을 '아빠'로 여기며 밝게 자라고 있다.

이후 주위에 버려진 가엾은 아이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알게 된 스님은 27평짜리 2층 법당 아래쪽 1층 전체를 아이들 방으로 개조,스님 아빠의 길로 들어섰다.

식구가 차츰 늘어가자 스님은 40평짜리 조립식 가건물 2동을 지어 방과 거실 및 식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현재 할머니(75)와 아주머니(55)가 절에 머물며 아이들 식사를 도와주어 큰 힘이 되고 있다.

게다가 지난 3월부터는 주부 및 대학생 자원봉사자 5명이 영어.국악.미술.피아노 등 특기활동을 지도해줘 교육문제도 어느 정도 해소됐다.

한 겨울로 접어든 요즘 스님의 가장 큰 고민은 아이들의 목욕문제. 목욕탕이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3~4팀으로 나눠 일주일에 한차례 밤시간을 이용해 공중 목욕탕을 찾고 있지만 제대로 목욕을 시키는 데 무척 힘이 든다.

"한번 마음의 상처를 입었던 아이들이 두번 다시는 정신적 충격에 빠지지 않도록 돕고 싶다"는 지산스님은 "아이들이 생활하기에 불편이 없을 정도의 공간만 갖추면 좋겠다"고 말했다.031-876-2235.

전익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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