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반성 60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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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김영승(1959~ ) '반성 608' 전문

어릴 적의 어느 여름날

우연히 잡은 풍뎅이의 껍질엔

못으로 긁힌 듯한

깊은 상처의 아문 자국이 있었다

징그러워서

나는 그 풍뎅이를 놓아주었다.

나는 이제

만신창이가 된 인간.

그리하여 主(주)는

나를 놓아 주신다.


시인은 다른 시에서 '인간이 만든 것은 인간을 닮았다/ 핵무기도 십자가도/ 콘돔도'라고 쓰고 있다. 그런 세상과 인간을 보다가, 웃다가, 슬퍼하다가, 욕하다가 '만신창이'가 된 동시대의 시인이 있다. 주께서 그 크고 부드러운 손으로 잡아 축복받는 자들이 산다는 곳으로 인도하려다가 징그러워서 뿌리칠 만큼 그 상처는 깊고 처절하다.

김기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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